[호일당에서] 화폭에 담긴 재미난 일화…이야기를 알아야 그림이 보인다
[호일당에서] 화폭에 담긴 재미난 일화…이야기를 알아야 그림이 보인다
  • 윤덕우
  • 승인 2024.08.1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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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세동도
중국 원나라 유명 서화가 ‘운림 예찬’
침 튄 오동나무 씻을 정도로 결벽증
그의 다양한 기행 갖가지 일화 남겨
예로부터 그림 소재로 많이 활용
 
동자세동(부분)-장승업(간송미술관)
장승업의 고사세동도 중 간송미술관 소장 ‘동자세동’.

한가할 때 그림 도록을 펼쳐보는 것이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요즘같이 무더운 여름날에는 더위를 잊게 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도 우리나라 유명 옛 그림들이 담긴, 두꺼운 도록을 펼쳐보며 차를 마셨다. 전에도 펼쳐본 도록이지만, 이번에 천천히 그림 설명을 읽기도 하면서 보다 보니 한 작품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이다.

먼저 ‘동자세동(童子洗桐)’이라 이름 붙여진 간송미술관 소장의 오원(吾園) 장승업(1843~1897)의 고사세동도이다. 세로가 가로 길이보다 세 배 이상 긴 족자 작품인데, 그림 가운데 비스듬하게 자란 큰 오동나무 하나가 화면의 주인공으로 자리하고 있다. 오동나무 곁에 놓인 높은 탁자 위에 동자 하나가 올라가 수건을 든 두 손으로 오동나무를 닦다가 나무 아래에 있는 어른을 바라보며 그 말을 듣고 있는 듯하다. 탁자 위 동자 뒤에는 물 항아리가 놓여있다. 나무 아래에는 탕건을 쓴 노인이 평상에 걸터앉아 오동나무를 닦고 있는 동자를 올려다보고 있다. 평상에는 책과 서화 두루마리, 다관(茶罐)이 놓여 있다.

 

운림세동도-최자충-대만고궁박물원
명나라 최자충이 그린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운림세동도’.

◇중국 화가 예찬(倪瓚)의 일화가 소재인 그림

이 그림이 흥미로운 점은 옛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풍경화나 인물화, 추상화가 아니다. 그래서 그림 자체만 보고는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가 없다. 그 이야기를 알아야 그림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작품, 신화나 역사상의 특정 인물과 관련된 일화를 소재로 하여 그린 그림을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畵)라고 한다.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왕희지환아도(王羲之換鵝圖),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 죽림칠현도(竹林七賢圖), 파교심매도( 橋尋梅圖) 등이 대표적이다.

운림세동도(雲林洗桐圖)라고도 불리는 이 고사세동도 역시 대표적 고사인물화이다. 이 고사의 주인공은 중국 원나라 선비이고 시인이자 유명 서화가인 운림(雲林) 예찬(1301~1374)이다. 오는 운림(雲林), 운림산인(雲林散人), 무주암주(無住菴主) 등. 오진(吳鎭)·황공망(黃公望)·왕몽(王蒙)과 더불어 ‘원말 4대가’로 불리었다. 세상일에 어두워 ‘예우(倪迂)’라고도 불렸고, 갖가지 일화를 남겼다. 살림이 넉넉하여 고서화, 고기물(古器物) 등을 모으며 풍류적인 은둔생활을 했다. 명나라 초에 조정의 부름을 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은일과 방랑 속에 평생을 보냈다.

4대가 중 ‘풍운 제일’이라 불린 예찬은 형태에 구애되지 않는 공활(空闊)하고 소조(蕭條)한 작품 정취로 후세의 문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화론인 ‘흉중일기(胸中逸氣)’는 동양 전통사상인 유(儒)·불(佛)·도(道)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산물이다. 일기사상(逸氣思想)은 도가적인 청담(淸淡)이나 허무(虛無), 무위사상(無爲思想)의 영향으로 문인 사대부 사이에 일어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이는 남종 문인화의 이론적인 토대가 되었다.

◇침 튀긴 오동나무를 씻게 한 결벽증

고사세동도는 예찬의 기행 중 그의 지나칠 정도의 결벽(潔癖)한 성품과 관련된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극단적으로 먼지를 싫어한 예찬은 틈나는 대로 손을 씻었는데, 물과 수건을 든 시녀가 늘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혼자 있기를 좋아했던 그는 걸핏하면 목욕을 했고 세수할 때는 물을 몇 차례나 갈아야 직성이 풀렸다. 의복도 하루에 서너 번씩 갈아입고, 정원에 있는 괴석이나 나무를 종일토록 씻고 닦도록 시켰다.

결벽증의 압권은 침이 튄 오동나무를 씻게 했다는 일화다.

어느 날 그가 숨어사는 운림(雲林)에 한 절친한 벗이 찾아왔다. 그런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가던 그 벗이 무의식중에 침을 뱉었고, 그 침이 주변의 오동나무에 묻었다. 오동나무를 지극히 좋아했던 예찬은 그 벗이 돌아간 뒤 오동나무에 묻은 침을 동자로 하여금 물로 씻게 했다. 이 이야기가 ‘운림세동(雲林洗桐)‘라는 고사로 전해지고,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이 고사는 예찬의 삶과 연결돼 어떤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는 고결한 선비의 결벽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면서 명·청대 그림에서 종종 작품 소재가 되었고, 조선의 화가 장승업도 즐겨 그렸다.

고사세동도(부분)-장승업-리움미술관2
장승업의 고사세동도 중 리움미술관 소장 ‘고사세동도’.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도 즐겨 그려
그가 그린 고사세동도 최소 3점 이상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선물하기도
간송미술관·리움미술관 등 소장

◇장승업이 즐겨 그린 소재

장승업은 이 고사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가 그린 고사세동도는 최소 3점 이상인 듯하다.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리움미술관과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도 한 점씩 소장하고 있다.

리움미술관의 고사세동도는 장승업이 화제로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라고 써 놓은 작품인데, 역시 세로로 긴 작품의 화면을 거대한 오동나무 고목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높은 받침대 위에 올라간 아이가 한 다리를 나무 둥치에 올린 채 수건으로 나무를 닦고 있다. 오동나무 아래에는 지필묵이 놓여있는, 고급스런 평상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 아래에 있는 석상(石床)에 기댄 예찬은 아이를 바라보며 뭔가 지시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모스크바 국립동양박물관 소장 고사세동도는 높이 174㎝에 이르는 세로 대작으로, 리움미술관 소장 작품과 유사한데, 예찬과 오동나무의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다. 작품에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서명 앞에 ‘조선(朝鮮)’ 국호를 붙인 점이 눈길 끈다. 이는 러시아 황제에게 선물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한 작품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1896년 조선 고종이 러시아제국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맞아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삼은 축하 사절단을 파견하면서 선물로 가져간 장승업의 대작 그림 4점 중 하나다. 당시 러시아 황제에게 선물한 장승업 그림 4점은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이다. 모두 고사인물화이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선물 17점 중 일부다.

‘노자출관도’는 중국 주(周)나라 벼슬을 내려놓은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 은거했던 고사를 그린 것이고, ‘취태백도’는 술을 마시고 나서야 시를 썼다는 당나라 시인 이백(이태백)을 묘사한 그림이다. ‘왕희지관아도’는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가 거위를 보며 서예의 영감을 얻은 고사를 그린 것이다. 네 작품 모두 높이(세로 길이)가 174㎝에 달하는 대작들이고, 작품마다 아래쪽에 ‘조선(朝鮮)’을 먼저 쓰고 ‘오원 장승업’이란 한자 서명를 했다.

역관 출신의 장승업은 40세를 전후해 화가로서 유명해지자 왕실의 초빙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감찰이란 관직을 제수받기도 했다. 그도 기행으로 유명했다.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하여 미인이 옆에서 술을 따라야 좋은 그림이 나왔다고 하며, 아무것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방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산수화, 고사인물화, 사군자화, 화조영모화(花鳥翎毛畵),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 등 여러 분야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었다.

중국 그림으로 명나라 최자충(崔子忠)의 ‘운림세동도’(대만 고궁박물원 소장)를 소개한다. 세로로 긴 화면 왼편의 커다란 검은 괴석(怪石) 아래서 오동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꼬장꼬장한 얼굴의 선비가 예찬이다. 시녀 둘이 곁에 시중들고 있다. 예찬이 바라보는 곳에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끼처럼 생긴 빗자루로 오동나무를 씻고 있는 하인이 있다. 예찬이 사랑한 오동나무는 풍성한 잎을 자랑하며 멋진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나무 아래로 연녹색 옷을 입은 다른 하인이 물을 길어다 청동대야에 붓는 모습이 있다. 왼쪽 상단에는 예찬의 인품을 찬양하는 글을 써놓았다. 중국의 대표적 고사세동도이다.

 

김봉규 칼럼니스트 bg4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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