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는 헌혈(獻血)로 이어진 혈연(血緣)입니다”
[기고] “우리는 헌혈(獻血)로 이어진 혈연(血緣)입니다”
  • 승인 2024.08.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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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텐진중의약대학 의학박사·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 헌혈홍보위원
2006년, 샌디에고 파드레스 소속이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가 급작스러운 장출혈(腸出血)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그는 치료와 회복을 위해 수혈을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말했다.

소속 구단의 선수들과 선수 가족들의 적극적인 헌혈로 수혈을 받아 건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건강을 회복한 박찬호 선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소속팀과 팀 동료들에 대한 유대감과 믿음, 진한 동료애가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한적십자사에서 150회가 넘도록 헌혈을 해 오며 첫 헌혈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나의 첫 헌혈은 수술을 앞둔 큰 이모님에게 수혈해 드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첫 헌혈을 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헌혈을 개인적인 사명감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시작하여 꾸준히 이어온 지 올해로 10년째이다. 그동안 헌혈로 차곡차곡 모은 헌혈증서는 필요할 때마다 나눔이 필요한 곳에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그러다 최근 지인이 몸이 많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혈병이었다. 백혈병은 알려진 대로 골수의 정상 혈액 세포가 암세포로 전환, 증식하면서 발생하는 혈액암(血液癌)이다. 백혈병 세포는 무한 증식하여 정상적인 백혈구, 적혈구 및 혈소판의 생성을 방해한다. 이로 인해 정상 혈액세포의 수치를 감소시켜 신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

그래서 코피, 혈뇨 등 각종 출혈을 포함한 응급증상이 나타나면 제때 수혈을 받아야 하고 응급 증상이 없을 때에도 매일 채혈을 해 혈액 수치를 확인하고 수혈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지인 역시 2~3일마다 전혈 또는 부족한 혈액의 성분을 그때그때 수혈받아야만 했다.

백혈병으로 입원 치료를 받던 지인을 위해 대구종각로타리클럽에서 너도나도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혈액형이 같아 수혈이 가능한 사람들은 헌혈을 신청했고 어떤 이들은 여기저기서 헌혈증을 모아서 전달했다. 필자의 지인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수혈을 잘 받으며 치료를 이어가던 어느 날 퇴원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물론 아직 완치는 아니기에 병원을 옮겨서 계속 치료를 받고 몸을 다스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당장 눈앞의 큰불은 끈 셈이었다.

백혈병으로 고통받았던 지인을 위해 마음을 모았던 모든 분들은 그의 퇴원에 매우 감사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큰 이모님이야 가족이었기에 이모님을 위한 헌혈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 몇 차례의 헌혈은 나의 혈액이 그 누군가가 아닌 내 지인의 몸에 흘러 들어가 그의 생명을 지켜 주었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이를 계기로 헌혈이 정말 ‘귀한 나눔의 실천’이라는 생각이 더욱 깊어졌고 지금까지 내가 헌혈을 꾸준히 해 왔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이번 몇 회의 헌혈을 하면서 헌혈을 하기 전 마음가짐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좀 더 건강한 상태로 헌혈에 임하기 위해 노력했고 간절한 마음이 혈액에 녹아들어 전달되지 않을까하는 염원을 담아 헌혈에 임했던 것 같다. 마치 헌혈의 과정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처럼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어 다가가는 느낌(?)이라면 비슷할까?

헌혈이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를 새삼 확실히 깨닫고 헌혈을 꾸준히 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헌혈(獻血)로 이어진 혈연(血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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