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과 어울진 계곡을 펼쳐놓은 수묵화는
한 계절의 흰 붓놀림을 놓고 여리게 떨고 있다.
숲에는 이제 동요가 일기 시작한다.
박새가 흩어진 마른 풀 섶을 일구며
후미진 새 길을 뚫고,
부드러운 햇볕이 바람을 보태니
잠시 머무는 세월 밑자락에 우물이 패어
맑은 햇살이 고이고,
흩어지지 못하는 여유가 담아 논
빛 우물의 눈부심에
새는 놀라 자리를 뜬다.
길섶에 보이지 않던 기척이 줄을 따른다.
앞서 와 앉아버린 2월의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그 향기에 놓치고 마는
벤치 위의 구름 그림자.
그 눈부신 흔적.
겨울 숲을 서성이는 햇살의 아름다운 구속.
태울 것 하나 없는…
▷전남 완도 출생. 광주고, 한국외국어대 졸업. 계간『문학예술』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바이어 코리아 광주 · 전남지점장 역임.
이상렬의 `그 숲 벤치 위의 2월’은 한마디로 시의 이미지와 시적 리듬이 조화로운 시편이다.
시가 `부드러운 햇볕이 바람을 보태’는 듯 싱그럽고 날렵하다. `마른 풀 섶’으로 `새 길을 뚫고’ `우물이 패어 / 맑은 햇살이’ 고이는 우물의 눈부심, 이 모두가 마치 한 폭의 살아 숨 쉬고 약동하는 2월의 수묵화가 아닌가.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의 예리한 시적 감각과 사물에 대한 혜안의 투시력이 눈여겨보아진다.
`벤치 위의 구름 그림자’와 `겨울 숲을 서성이는 햇살의 아름다운 구속’이 시인의 뛰어난 스케치로 읽는 이의 심상에 봄이 화폭으로 펼쳐진다.
이일기(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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