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따라잡기] 윤희 작가 개인전…리안갤러리 내달 26일까지
[전시 따라잡기] 윤희 작가 개인전…리안갤러리 내달 26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24.09.0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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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은 작가의 역할·재료 물성의 적극적인 개입 결과”
예술가·물성의 관계는 ‘수평적’
허리디스크로 용해 작업 시작
고책·액체 변화에 가변성 높아
캔버스 바닥에 놓고 용액 던져
생동 회화 위해 무지개색 사용
비의도적인 것까지 ‘창작 범위’
윤희-작가
윤희 작가가 리안갤러리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리안갤러리 제공

  

예술가는 제3자가 간섭할 때 극도로 예민해진다. 창작 과정을 오롯이 자신의 제어 아래 두고 싶어 한다. 그럴 경우 희열을 느끼고, 우주적인 창작물을 출산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리안갤러리 대구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윤희 작가의 경우는 사뭇 달라, 유난히 자발성이나 자율성 같은 개념들을 부각한다.

언뜻 들으면 작가의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작업에 대한 그의 정의는 작업이 작가의 창작물이라는 일반적인 정의와 결을 조금은 달리한다. 그는 ‘작업’을 작가의 역할에 작업의 재료인 물성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결과라고 정의내린다. 작가와 물질의 협공 결과가 작품이라는 철학을 고수한다. 이에 따라 물성의 특징을 최대화 하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윤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전시장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윤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전시장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즉흥적이고 가변적인 용액 조각 구현

물질의 본성을 허용하는 태도는 예술가의 본성에 반하는 행위다. 창작자가 작업 전반에 개입하며 “온전히 자신의 기운으로 작품을 만들겠다”는 태도는 예술가의 전매특허다. 하지만 그는 작업 과정 중 어느 한 부분에서 물성의 자율성을 한껏 허용하려는 태도로 일관한다. 예술가의 창작에 대한 욕망을 물성에 일정 부문 양보하는 것이다.

물성에 대한 존중은 결국 예술가와 물성의 역학관계의 재정립으로 이어진다. 흔히 예술에서 예술가와 물성의 관계를 수직관계로 놓기 마련이다. 물질이 작가의 의도를 구현하는 재료로 국한된다. 하지만 그는 작가와 물질과의 역학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치환한다. 물성의 특성을 최대한 허용하는 태도다. 예술가와 물성이 수평관계일 때 상생과 겸양의 미덕이 발현되고, 그런 조건 속에서 작업은 드라마틱한 변주를 거듭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물성을 존중하는 태도는 금속을 녹인 용액을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활성화됐다. 천상 조각가인 그는 작업 초기에 산업현장에서 수집한 금속파편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용액 작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됐다. 허리디스크의 발병이었다. “금속덩어리의 무게가 몸을 상하게 했고, 더 이상 작업을 진행할 수 없었어요.”

허리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자, 그는 묘책을 냈다. 몸 쓰는 일을 원천 차단하자는 것. 대안이 거대한 금속덩어리였다. 애초에 몸으로 들어 올릴 수 없는 규모의 덩어리를 사용하겠다는 호기로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대규모 덩어리가 주는 제약을 노정했다. “덩어리가 너무 커서 작업이 용이하지 못했어요.”

몸에 무리가 없고, 작업도 원활한 물질이 절실했다. 언뜻 생각하면 가벼운 성질의 새로운 재료를 찾았을 법한데, 그는 금속이나 알루미늄 같은 광물질에 대한 선호까지 바꾸려 하진 않았다. 금속덩어리 대신 덩어리를 녹인 용액을 사용하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2000년대 초반, 용해 작업의 시작이었다. 용해 작업은 완성도를 더해가며 윤희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용해 작업이 시선을 사로잡은 이유는 다양했다. 그것은 △광물질 덩어리를 800~1천200℃의 고온에서 녹인 액체를 틀에 던진다는 작업 방식 △펄펄 끊는 액체를 던지는 과정에 작가가 아닌 전문가가 개입하는 상황 △액체에서 고체로 물질의 상태 변화 등이었다.

금속덩어리를 녹인 용액은 전문가에 의해 벽면에 매달린 원추 또는 원형의 주형에 던져지며 형태를 갖춰간다. 던지는 힘과 방향, 속도, 양을 달리하는 과정에서 작업은 무한증식이 가능해지고, 애초에 작가가 고안했던 것보다 더 드라마틱한 결과물을 양산하기에 이르렀다. 고체에서 액체로 전환했다 다시 고체로 변화하는 과정이나, 던지는 행위를 작가가 아닌 쇳물을 다루는 전문가에게 부여하거나, 펄펄 끊는 쇳물을 다룬다는 극도의 긴장감 등이 작품에 새로운 서사로 자리를 잡아갔다. 금속 덩어리보다 더 높아진 가변성이 작품 속에서 빛을 발했다.

△작업의 재료인 펄펄 끊는 액체 △작업 과정에서의 전문가와의 협업 △극소수의 전문가만 다루는 특수한 물성 등은 그의 작업을 설명하는 핵심 단어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그의 작업을 한마디로 수렴하면 즉흥성과 가변성이다. 액체를 던지는 힘이나 주변여건, 전문가가 누구냐에 따라 작업의 향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물성이 가고자 하는 길이 있고, 저는 그 길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즉흥성과 가변성이 주는 효과는 특별했다. 최소한의 조형성을 제공하는 틀을 벽면에 부착하지만, 용액이 틀 속으로 던져지는 순간 어떤 형태가 나올지는 예측불가지만, 오히려 그 예측불가능성에서 새로운 서사들이 비집고 나왔다. 던져지는 행위의 반복에서 동굴 천장에 매달린 종류석이나 나선형 형상들이 위용을 갖춰갔지만, 매번 형태는 다르게 나왔다. 그때마다 새로운 서사들이 용솟음쳤다. ‘순간 포착’이 주는 특별한 서사들이었다.

“작업 행위가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작업이 스스로 형상을 드러내게 됩니다. 물질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작품이 ‘스스로 되어 지도록’ 허용 하는 것이죠.”

용액의 자발성을 작업에서 충분히 허용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역할은 강렬하다. “던져지는 용액을 받아들이는 틀을 제시하거나, 틀에 쌓이는 용액을 어떻게 축적하고, 언제 던지는 행위를 끝낼 것인가”는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윤희 작 N12
윤희 작.

◇ 물감 용액으로 조각의 확장 모색한 무지개 회화

우연적인 요소들을 제시하며 물질의 자발성을 허용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르를 초월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는 윤희 작가다. 자신의 작업에 대해 “물질을 내 의도대로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것이 스스로 형태를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 일관된 작업 방식”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새로운 작업들로 리안갤러리 대구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윤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전시장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윤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안갤러리 전시장 전경. 리안갤러리 제공

 

2층 전시장 바닥에 설치된 조각 작업인 ‘코스모스(Chaos Cosmos)’ 시리즈는 알루미늄 용액에 숯과 철 더미를 추가한 작품이다. 숯 부스러기와 철 더미에 알루미늄 용액을 던져서 발생하는 튀김과 흘림 현상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기존의 금속 용액을 녹여낸 조각 작업이 섬세하고 바스러질 것 같은 ‘얇은 금속 껍질’을 구현했다면, 신작은 고체와 액체 두 물질이 만나 서로 엉키고 섞이면서 ‘무겁고 거친 덩어리’로 변환했다.

‘코스모스’ 시리즈에선 작가의 의식이 우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코스모스’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태고의 신비를 품고 있는 우주의 모습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2층 전시장 벽면에 걸린 ‘Irreversible(돌이킬 수 없는)’ 시리즈는 알루미늄 용액을 던져 즉흥적으로 드로잉 하듯 제작한 작품이다. 용액의 성질과 점성, 던져지는 방법과 힘, 방향과 속도를 상상하고 우연과 돌발적인 사고(事故)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한 결과물이다. 액체 상태의 물질을 던지는 방식으로는 미리 구상한 어떠한 형상이 정확하게 구현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스럽게 우연성과 가변성을 받아들였다.

윤희 작. 리안갤러리 제공
윤희 작. 리안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의 백미는 무지개 색으로 구현한 회회 시리즈다. 페인팅 작업은 코로나 19 팬데믹을 겪으면서 잉태됐다. 전시가 중단되면서 새로운 재료와 매체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주어졌고, 회화 작업이 완성도를 더해갈 수 있었다. 지금까진 흑백 대비가 돋보이는 페인팅을 선보였다면, 이번 전시엔 무지개 색을 기반으로 힌 회화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그가 “다양한 색을 쓴다는 것이 내겐 미지의 분야에 대한 도전 같았고, 그래서 굉장히 기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했다. “색채 회화는 첫 전시지만 흑백 회화를 할 때 색채 회화도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막상 발표하려니 어떻게 보여 질지 두렵기도 합니다.”

그가 “회화 작품도 조각의 연장”이라고 언급했다.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물감 용액을 던져서 단숨에 제작한다는 점에서 광물질 용액을 던져서 만드는 조각 작품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였다. “어떤 조형성을 회화적으로 구현 했다기보다 물질을 통해 기운 같은 내적 가치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흑과 백이라는 단색조의 이전 작업과 비교하면 무지개색 회화는 보다 복합적이다. 용액 작업과 같은 기운 생동하는 회화를 구사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무지개색을 사용했다. 단색으로 했을 때 색이 가지는 고정관념이 끼어들기 마련인데, 무지개색으로 통일하면서 색채가 가지는 특유의 정서는 사라졌다. 대신 운동성이라는 기운이 화면을 압도한다.

물감 용액을 사용한 회화 역시 의도성과 비의도성의 결정체다. 물감 용액을 던지는 순간에 작가의 의도가 발현되지만, 던져지는 순간 용액의 의지로 흘러간다. 그는 의도적인 행위와 비의도적인 흐름에 의해 생성된 형상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저는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작업을 못하는 것 같아요. 비의도적이고 반인공적인 것에서 창작의 범위나 창작의 여지를 더 넓힌다고 믿고, 그런 작업들을 해 오고 있습니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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