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고대사회도 ‘민이식위천’
일 통해서 삶의 의미·행복 찾아
2000년대 들어 일자리문제 대두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 정책 펴
독일, 노동에 대해 철학적 고민
칼 마르크스,‘자본론’에 담아
히틀러, 일자리로 사회 안정 도모
유대인들 강제노역 극단적 사례
2024년 4월11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계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인근에 있는 ‘개천지(開天池)’에 들렸다. BC 200년경 중국 진시황제(秦始皇帝) 때 만리장성 등 국가 대형토목공사 공역에 시달렸던 백성들이 망명해 이곳에다가 ‘물동이 나라(彌凍國)’를 세웠다. 벼농사에 필요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자 삼한시대의 저수지인 ‘대제지(大堤池)’를 이곳에 조성했다. 그들의 후손들이 조선시대 ‘개천지(開天池)’로 대체 축조했다. 10월 3일을 ‘개천절(開天節)’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개천이란 ‘하늘을 연다(開天).’는 같은 뜻이다. 그러나 같은 하늘은 아니다. 개천절(開天節)의 하늘은 정치적인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서 “다스릴 나라”를 의미한다. 그러나 개천지(開天池)가 지향하는 하늘은 “백성들에겐 먹거리가 하늘이다(民以食爲天).”에서 ‘먹거리(일자리)’를 뜻한다. 중국 고전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조선건국(朝鮮建國)의 근본이념(根本理念)이었다. 즉 1394년 정도전(鄭道傳)이 민본사상(民本思想)을 담았던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도 “국가의 근본은 백성이고, 백성에게 먹거리(일자리)가 하늘이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고 첫머리에다 규정했다.
오늘날 “일자리 복지(job welfare)”가 동양 고대사회에서도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이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를 잡았다. i) BC 1600년경 은나라 탕왕(殷湯王)이 백성들에게 일자리(먹거리)가 부족하여 나라에 어지러움이 발생하자 대국민 사과문(罪己詔)을 발표했다. 오늘날 표현으로 요약하면 : 첫째 백성들에게 충분한 일자리(먹거리)를 마련하지 못했다. 둘째 궁중이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다. 셋째는 뇌물과 참언을 없애지 못했다. 이 모두가 나에게 죄가 있다(予一人有罪). ii) 공자(孔子, BC 551 ~BC479)는 BC 480년경 “네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면, 비록 말고삐를 잡고 채찍을 치는 천한 일(雖執鞭之士)이라도 하겠다(吾亦爲之). 그렇지 않다면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에 찾아갈 것이다.”고 했다. iii) 당나라 백장회해선사(百丈懷海禪師, 749~814)는 AD 800년경에 “수양이란 심산유곡에서 참선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눈물을 흘리고 이를 갈면서 참는 것이다.”고 했다. 뿐만아니라 먹거리를 마련하는 일을 통해서 마음을 닦는 것을 중히 여겼다. “하루를 바쁘게 일하지 않았다면 그날 하루는 먹지 말아라(一日不作,一日不食).”고 했다. 일을 통해서 먹거리를 마련하고, 일을 통해서 삶의 의미를 찾고 나아가서 행복도 얻는다는 것이었다.
일(혹은 일자리)을 통해서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i) 단순하게 안정된 먹거리였다. 그리고 ii) 오늘 하루의 평온한 마음이고 iii) 나아가서는 미래의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 iv) 더 나아가서는 행복추구이고, 꿈을 실현하는 터전으로 생각해왔다. v) 오늘날 심리학 용어로는 매슬로(Maslow, 1908~1970) 인간의 ‘욕구 5단계(5 Hierachy of Needs)’ 를 구현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에 들어와서 지구촌에선 일자리문제가 대두되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Job is the best welfare)” 라는 정책을 실시했다. 우리나라도 2013년 “국민행복시대” 를 외쳐왔다. 2017년 제1호 정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추진했다. 2023년 3월14일 대통령이 “최고의 복지는 바로 일자리다. 양질의 일자리는 나라에서 재정으로 세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민간 기업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일자리는 현재의 생계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미래먹거리 걱정을 들어주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는 점에서 종합복지셋(comprehensive welfare set)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사실을 BC 300년경 맹자(孟子)는 당시 사회가 오늘처럼 복지사회는 아니었지만,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고민했다. 제후들에게 먼저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자문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은 사람은 평온한 마음 상태로 살아갈 수 있다(有恒産者, 有恒心者). 안정된 일자리가 없다면, 돈이 많을 땐 방탕하거나 사치하며, 없을 때는 빈곤에 시달려 문란한 삶을 살게 된다.”고 했다.
일자리 혹은 노동에 대해 철학적인 고민을 가장 많이 한 나라는 독일이었다. 대표적인 독일의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1883)는 1830년 12살 때 프리드리히 빌헬름 김나지움(Friedrich Wilhelm Gymnasium)에 입학해 라틴어, 그리스어, 역사, 철학 등을 배웠다. 17세 나이로 1835년 8월 김나지움 졸업논문(Abiturienarbeit)으로 ‘일자리를 찾는 한 젊은이의 살펴봄(Betrachtung eines Junglings bei der Wahl eines Berufes)’을 제출했다. 당시 소회는 “우리가 소명(calling)으로 믿어왔던 그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우리가 일자리를 찾아 헤매기 이전에 이미 일자리들은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었다.” 그는 경제학자로 상품을 통해서 자본을 형성하는데 상품에는 자본, 지대 및 노동으로 결정된다는 생각을 1867년에 ‘자본론(Das Kapital)’에 담았다.
“일부 노동자를 과로사로 내몰고, 나머지 노동자를 실업자로, 극빈자의 예비군으로 남겨두는 건 자본주의에 있어 생산 방식의 본질에 속한다.”라고 ‘잉여가치론(Theorie des Mehrwerts)’에서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일자리를 통한 사회적 안정화를 도모했던 극단적인 사례는 독일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다. 그는 유대인을 강제수용소에다가 구속·감독해 강제노역을 시켰다. 비인간적인 참상으로 폴란드(Poland) 국경 ‘5월의 해변(Auschbitz)’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Konzentrationslager Auschwitz) 정면에 적혀 있는 구호가 “일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Arbeit macht frei).” 는 말이다. “죽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도록 한다.”는 눈물 나게 유대인을 아끼는 독재자 히틀러의 관용이 표현되어 있다. 오늘날 독일 사람들은 “많은 일을 시키는 건 사람을 아프게 만든다(Zu viel Arbeit macht Menschen krank).”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독일의 노동철학을 살펴보면 “일하는 사람만이 인간으로 대접을 받는다(Das Arbeit macht Menshen).”는 한마디에 다 담겨있다. 같은 맥락으로 “눈물로 얼룩진 빵을 먹지 않고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Sie werden den wahren Geschmack des Lebens erst kennen, wenn Sie tranenbeflecktes Brot essen).”는 독일 문호 요한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r’s Apprenticeship)’라는 소설 가운데 ‘하프 악사의 노래(Lied eines Harfenmusikers)’에서 “눈물로 얼룩진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 근심에 싸여 수많은 밤을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앉아 울며, 지새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참맛을 모른다.”고 과거를 되돌아보는 구절이 나온다. 삶은 “눈물 젖은 빵(tranengetranktes Brot)”맛에 숙성된다는 의미를 찾았다. 같은 글이 구약성서 시편(80:5) “그들을 눈물의 빵(bread of tears)으로 양육하시며, 많은 눈물을 마시게 하시나이다.” 심오하게 음식 맛을 통해서 인생의 맛을 느끼게 한다.
글·그림= 이대영 코리아미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