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박정희] (7)세계가 칭찬한 박정희 대통령...각국 지도자들, 시대·이념 초월 “박정희는 나의 모델”
[2024 박정희] (7)세계가 칭찬한 박정희 대통령...각국 지도자들, 시대·이념 초월 “박정희는 나의 모델”
  • 윤덕우
  • 승인 2024.09.12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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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국 함정 벗어난 한국 경제는 기적”
고속도로·새마을 운동·제철은 ‘3 신화’
김정일도 “서울 가면 박정희 묘소 참배”
題字:石鏡 이원동
題字:石鏡 이원동

 

원본-갤럭시Z플립6셀카
2024 파리올림픽 여자 유도 52kg급 시상식에서 수상자들이 갤럭시 Z 플립6 올림픽 에디션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연합뉴스
 

제33회 파리 올림픽에서 메달리스트 승리의 순간을 남기는 ‘빅토리 셀피(Victory Selfie) 장면이 세계적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삼성 갤럭시 Z플립6로 찍는 선수들의 모습은 전 세계인에게 영광과 기쁨의 순간을 생생히 전달했다. 올림픽 에디션으로 제작된 갤럭시 디자인과 성능이 세계 최고임을 입증했다. 세계 경영학계는 이런 기획과 창의적 혁신성에 놀라워했다.

2024년 8월 1일 세계은행(World Bank)은 2024년 세계경제개발보고서에서 한국을 ‘성장 슈퍼스타’로 극찬했다. 경제성장이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성공사례로 한국을 말했다. 중진국 함정이란 개발도상국이 중진국(1인당 국민총소득 GNI $4,466 ~13,845)에 진입한 후 고소득국으로 도약 하지 못하고 정체되는 현상을 말한다.

2023년 현재 한국 GNI는 약 33,000 달러이다.

한국 경제는 기적이다. 1960년대, 전쟁의 폐허 속에서 단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불과 수 십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을 탄생시키며 눈부신 선장을 이루었다. 1960년대 개발도상국에 대부금을 제공하는 세계은행 총재였던 유진 R. 블랙 시니어는 우리 한국의 경제개발 계획, 특히 종합제철소 건립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경제학자이기도 했다. 그의 분석과 영향력으로 인해 IMF 등 세계 금융기관과 차관시장에서 우리나라 돈줄이 막혔다. 한국은 실패하리라던 그의 예상을 깨었다. 성공적인 종합제철소를 건설했다. 이를 발판삼아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며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박정희 대통령 큰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은 경부고속도로 건설, 새마을운동, 포항 종합제철소 건설이다.

세계은행 총재이던 유진 블랙은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개발도상국에는 세 가지 신화가 있다. 첫째는 고속도로의 건설, 둘째는 종합제철의 건설이고, 셋째는 국가원수 기념비의 건설이다.”라고 발언했다. 세계은행은 비경제성과 재정 낭비를 이유로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결국 우리 정부는 잘 알려져 있듯이 한일국교정상화 때 합의된 청구권 및 차관공여액으로 무상자금 3억 달러, 유상자금 2억 달러, 상업 차관 3억 달러 중 그 상당액을 종합제철 건설에 투자하는 용단을 내렸다. 국민들의 상당한 반대를 각오했다.

1968년 4월에 착공된 철도, 항만, 용수, 토목 등 부대시설에 이어 1973년 7월에 103만 톤 규모의 본 공장시설이 준공되었다. 1981년 5월에는 생산능력이 850만 톤에 이르렀다. 후진국에서 풀 세트 중화학 공업을 본격적으로 건설한 것은 한국이 역사상 최초였다.

그 이후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 새마을 운동이 온 국토를 휩쓸며 수출 100억불도 3년 앞당겨 초과 달성했다.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대한민국이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변모했다. 새마을운동은 노벨평화상 이상의 찬사를 받고 있다. 현재는 세계 중추국가의 비전을 가지고 인류에 기여하는 나라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북한의 김정일까지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하였다. 정주영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옛날에는 유신이니해서 비판의 말을 많이 듣던 박정희 대통령이 요즘에는 좋게 인식되는 것 같은데 초기 새마을운동 덕택에 경제발전의 기초가 되었음은 훌륭한 점입니다. 나도 영화를 통해서 본 서울은 일본의 도쿄보다 훌륭한 도시로서 자랑할 만한 세계적 도시였습니다. 서울에 가면 박정희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을 평가했던 국제 인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경제발전의 성공요인을 잘 이해하여 미래 성장을 위한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박정희기념재단에서 발간한 책 <증언: 박정희를 말하다>를 많이 참조했음을 밝혀둔다.

이제 세계은행 차관을 거절당하던 대한민국은 없다. 세계은행 측에서 오히려 한국 경제 발전 모델을 배우기 위해 파트너십을 제안 받는 나라가 되었다. 세계은행 한국지부도 인천 송도에 있다. 전 세계 빈곤을 퇴치할 방법을 알고 있는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사는 일생동안 높은 소득 수준을 달성하고자 하는 모든 중소득국가의 정책입안자들이 반드시 숙지하여야 할 필독서”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중진국의 함정을 극복한 이유를 3i 전략 덕분으로 분석했다. 3i는 투자(Investment), 기술도입(Infusion), 혁신(Innovation)이다. 이 세 가지는 박정희가 우리에게 물려준 DNA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대의 사고를 뛰어넘는 ‘그랜드 디자인’에 능했다. 고속도로와 중화학공업건설, 새마을 운동, 방위산업 등은 ‘사색하는 인간’이었기에 가능했다고 김정렴 비서실장은 말한다. ‘자주국방’과 ‘후손이 잘 사는 대한민국 건설’을 위해 아내와 함께 그 목숨도 조국의 제단에 바쳤다. 세계은행은 ‘가난 없는 세상 건설’이 슬로건이다. 우리 대한민국이 박정희라는 지도자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글=박정희아카데미 부속 박정희연구회

 

국제 인사들의 증언
늘 소박하고 서민적인 차림새에 존경
성공한 나라 만들기 결의에 깊은 감명
등소평·푸틴도 “박정희는 나의 모델”
“산업화 후 민주화…박정희가 옳았다”

<국제 인사들의 증언>

◇인간 박정희

△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 사령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나의 인식과 평가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정립된 것이다.

하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 경륜과 철학에 근거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박대통령의 훈훈한 인간성에서 느껴진 것이다. 만날 때마다 박 대통령에게서 느껴진 나의 감정은 ‘자기 조국을 위해서 저처럼 노심초사하는 정치인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 막스 올리비에 라캉(프랑스 언론인)

1975년 12월 20일 박정희 대통령과의 1시간 20분간에 걸친 회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외래문화의 좋은 부분은 받아들이되, 전통적 가치와의 융합을 통해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라고 박정희대통령의 말씀하셨다. 나는 드골장군의 애국심을 연상시키는 박대통령의 단호하면서도 자유주의적인 애국심과 치국원칙을 이해하게 되었다.

△ 하세가와 진 (일본 참의원 의원)

몸에 걸친 옷에서부터 손목시계에 이르기까지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인가 싶을 정도로 늘 소박하고 서민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다. 박대통령만큼 소탈하고 검소한 지도자를 본 적이 없다.

◇박정희 리더십

△ 마틴 유든 (전 주한 영국 대사)

한국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해야 한다. 한민족이 동일하다면 북한은 왜 실패했겠나? 답은 ‘박정희 리더십’이다.(2011년 10월 2일 중앙선데이)

도널드 그레그
도널드 그레그

 

△ 도널드 그레그 (미 CIA한국지부 총책임자, 전 주미대사)

나는 박정희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그의 판단력, 그의 전략적 감각, 한국의 경제발전, 그의 실용적 측면 등을 모두 존중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됐고, 이후 한국의 민주화가 가속됐다. 나는 그 이유가 경제발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 와타나베 도시오 (일본 다쿠쇼쿠대 교수)

그의 위대한 지도력이 1960~1970년대 한국의 경제기적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조국 근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그런 면에서 그는 ‘민족중흥’의 아버지라 할만하다.

1979년 10월 19일 방한 청와대 만찬에서 연설 중인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
1979년 10월 19일 방한 청와대 만찬에서 연설 중인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

△ 리콴유 총리 (전 싱가포르 수상)

눈앞의 현실에만 집착하는 분이셨다면 오늘 우리가 보는 이런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1979년 10월 19일 방한 청와대 만찬 연설) .나는 그의 강한 의지와 한국을 성공한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흔들림 없는 결의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박정희대통령이 없었다면 한국은 결코 산업국가로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2000년 From Third World to First:The Singapore Story 1965 -2000)

△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 네 마리 작은 용의 저자)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독재적인 리더십은 잔혹하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결국 좋은 것으로 결과를 맺을 때가 있다.(하버드 석학과의 대화 3, 조선일보 2006년 11월11일)

△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교수)

그는 진정으로 국력을 키웠다. 그는 미국 정책자문가들이 철강산업 같은 중화학공업을 반대했을 때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가 기간산업을 키워 냈다.(미시간 주 자택 인터뷰, 문화일보 2006년 8월 14일)

△ 마이클 키온( 호주 언론인 )

언젠가 역사는 박정희의 진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오늘날 세계가 직면한 리더십의 위기를 극복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고정일, 한국 국민에게고함. 동서문화사 2005)

◇정치, 외교, 안보 분야

△ 알렉산드르 만수로프(미국 존스홉킨스대, 아시아태평양 안보연구센터 교수)

박정희는 18년간의 강력한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그때까지 ‘정체되고 나태에 빠졌으며 봉건적이었던 한국사회’ 가난하고 후진적인 농업국가를 세계 유수의 공업국가로 바꾸어 놓았다.(한국 근대화, 기적의 과정. 월간조선사, 2005)

△ 마하티르 모하맛(말레이시아 총리)

단언컨대 한국이 처음부터 민주화가 됐다면 오늘의 한국이 없을 것입니다.(조선일보 창간 80주년 인터뷰, 2000년) 말레이시아 총리 공관

△ 헨리 키신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동시에 이룰 수 없다. 러시아가 이 두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다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박정희가 옳았다.(1999년 10월 21일 김종필 국무총리 접견 시 발언)

△ 후쿠다 쓰네아리 (일본 정치 평론가)

이런 걸출한 인물을 사람들이 독재자라고 비방한다면 나는 차라리 민주주의체제보다 독재주의체제를 택하겠다.(고독한 사람 박정희, 문예춘추 1980년 1월호)

△ 리처드 스틸웰 (주한 미군 사령관)

한국의 국방력을 튼튼히 다진 사람도 박 대통령이며, 정치 안정의 기반 위에 경제발전을 이룩한 공로자도 역시 박대통령이다. 혹시 정치적으로 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다 하더라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부인할 수 없으리라 본다.(내가 본 박 대통령. 서울신문 1978년 3월 9일)

△ 아이젠하워 대통령

박정희가 없었다면 공산주의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경제 분야

등소평
등소평

△ 등소평과 후진타오 (중국주석)

박정희는 나의 멘토다. (등소평)

나는 새마을 운동을 많이 연구했다. 상당수의 중국인들이 박정희를 존경한다. (후진 타오)

블라디미르 푸틴
블라디미르 푸틴

△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책은 어떤 것이라도 가져와라. 그는 나의 모델이다.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

△ 헨리 키신저(미국 정치인)

19-20세기 세계적 혁명가들 5인 중 경제발전에 기적을 이룩한 사람은 오직 박정희 한사람이었다. 그는 산업화 후에 민주화를 이룩한, 소위 민주화의 토대를 다진 인물이라서 나는 그를 존경한다.

△ 폴 케네디(역사학자 예일대학교 교수)

박정희는 세계 최빈국가를 불과 20년만에 세계적인 무역국가를 이루어낸 것은 실로 경이로운일이 아닐 수 없다

△ 앨빈 토플러 (미래학자 제3의 물결 저자)

민주화는 산업화가 끝난 후에 가능하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되어야 한다. 이를 가지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다. 박정희는 누가봐도 세계가 본받고 싶어하는 모델이며 세계 최빈국의 나라를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인 경제 국가로 성장시켰다. (2001년 6월 7일)

△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2009년 5월 23일 프놈펜 관저에서 한 인터뷰에서 “캄보디아 경제발전을 위해 박정희 모델을 많이 따르고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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