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민추협 가입했다고 강제퇴직 당한 유길영
<대구논단> 민추협 가입했다고 강제퇴직 당한 유길영
  • 승인 2009.03.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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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사단법인 민추협 사무총장)

민추협 사무총장 전대열과 중앙위원 유길영은 공동명의의 고소장을 서울 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 고소의 주인공은 유길영이다. 그는 1985년 당시 누구나 부러워하는 현대그룹 산하의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총무부 차장으로 있었다. 그 때는 전두환 신군부정권이 철권을 휘두르는 엄혹한 세월이었다.

하루는 유길영 등 현대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안국동 사거리에 나왔다가 길거리에서 민추협 입회신청을 받고 있는 현장을 지나게 되었다. 그들은 평소 광주학살을 자행한 군부정권에 대한 강렬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슴없이 입회원서에 서명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에 전무가 불렀다. 안기부에서 통고가 왔으니 민추협 가입을 취소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거절했더니 울산공장으로 발령을 냈다.

가족까지 거느리고 울산에 내려간 유길영은 또 다시 압박을 받는다. 인사담당 상무가 “민추협운동을 하려거든 나가서 하라”고 노골적으로 사퇴를 강요했다. 이를 거부하자 이번에는 책상을 치워버리고 무보직 발령을 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던 사원아파트도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돌아왔다. 사실상 회사를 그만 둔 것이다.

그러나 강요된 사퇴서는 낸 사실이 없다. 세월이 흘러 20여년이 지나갔다. 젊었던 시절의 고통을 감내하고 이제는 60대의 중반에 섰다.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나이가 되었지만 불명예스럽게 강제퇴직 당한 억울함은 풀길이 없다. 그 동안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선정되어 어느 정도의 자부심은 되찾을 수 있었다. 위원회에서는 현대모비스에 유길영의 복직을 권고하기도 했다.

네 차례에 걸쳐 복직권고가 이뤄졌고 민추협 의장단의 명의로 이를 뒷받침하는 공문도 발송했으나 현대 측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우이독경이다. 민주화운동을 한다고 해서 강제로 내쫓았던 과거사를 깡그리 부인하고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여 의원면직되었다고 뻗대었다. 현대 측은 유길영이 자필로 쓴 사직서를 위원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유길영은 이 사직서를 쓴 사실이 없다고 완강히 주장한다.

사직서 사본을 중앙감정위원회에서 필적감정을 받은 결과 유길영의 필적과 상이(相異)하다는 감정을 받았다. 날인한 인장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인장과 다르다는 감정이다. 이를 근거로 유길영은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사문서위조 동행사죄, 사인위조 부정행사죄’ 등으로 형사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유길영이 썼다는 사직서는 전혀 본인의 글씨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감정기관에서도 그의 주장을 인정하는 감정결과를 내놨다. 더구나 사직원의 `원’자는 바랄 원(願)자를 써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천천히 말할 원(?)으로 되어 있다. 이 글자는 평소에 아무도 쓰지 않는 한자어인데 이 사직원에서 처음 봤다. 이는 문서를 위조한 사람이 상사의 지시로 어쩔 수 없어 남의 글씨를 모방하면서 일부러 틀린 글씨를 써서 반발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아무튼 고소를 했으니 진위는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런 경우 명백하게 문서의 위조여부를 가려주는 유일한 국가기관이다. 국과수의 노력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하여 흉악범을 잡은 일이 하나둘 아니다. 이번에 연쇄살인범 강호순을 체포할 수 있었던 DNA검사도 국과수 아니었으면 놓칠 뻔했다. 현대모비스가 유길영의 자필이라고 내놓은 사직원은 여기서 가려져야 한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소멸시효 문제다. 이미 20여 년 전 사건이기 때문에 법의 규정대로 따지면 시효가 걸린다. 그러나 유길영은 자신의 사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전연 모르고 있다가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에 제출된 것을 보고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알게 된 날로부터’ 시효를 따진다면 충분히 범죄요건이 성립된다. 게다가 현대모비스가 위조된 문서를 제출함으로서 형사 죄를 저질렀음으로 이때부터 시효는 시작된다.

이것은 억지 주장이 아니다. 법원에서도 그러한 판례가 있기 때문에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기소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민추협 사무총장이 공동 고소인이 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현대 측이 민추협에 가입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잘 근무하고 있는 직원을 강제로 밀어낸 것은 민추협에 대한 극심한 모독이다. 이로 인하여 “민추협에 가입하면 직장에서 쫓겨난다.”는 소문 때문에 많은 동지들의 참여가 저지되었다.

최루탄의 자욱한 가스 속에서도 민추협 운동이 그나마 성공하여 직선제 개헌안을 쟁취하고 새로운 나라로 변모시킨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어둠의 희생자가 나온 것을 우리는 보상해야만 한다. 이것이 민주화운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민추협과 유길영의 공동피해는 국가가 보상할 책임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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