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노을 바다에는
붉은 파도가 밀려오고
섬에 살던 산들이
바다에 고단한 그림자를 남겨
돌아오는 작은 어선
길게 그은 여운남아
바람마저도 비켜 지날 듯한
넉넉한 포구에서
조개껍질의 잔을 들어
시름을 마신다.
손 내밀면 불쑥 일어나
잡아줄 듯한 섬
어느 사이 내 앞자리
친구 되어 주거니 받거니
내 마시고 너 취하고
바다를 술병에 부어 술을 담그면
하늘엔 달이 뜨고
바다는 달을 품는다.
▷전남 순천 출생. 대학에서 식품영양학 전공. 조선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문학예술』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현재 광주광역시에서 창작 활동.
이순남 시인은 이상렬 시인과 함께 부부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바다의 포구에서 바라본 화자의 심상은 한 폭의 수목담채와 같은 잔잔한 노을에 `섬에 살던 산들이 / 바다에 고단한 그림자를 남겨’ 놓은 풍정을 정감 있게 잘 그려 내고 있다.
무릇 모든 시인의 시가 그렇듯 이 시편 역시 시인의 심상을 바닷가 포구에서 한자락 `시름’까지도 담아내 보여 준다.
이 시의 후반부는 옛 시인 묵객의 정취를 재현해 뒤쫓기며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일상과는 대조적으로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데서 비롯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일기(시인 · 계간 `문학예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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