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독립운동자와 친일파는 필체부터 다르다
<대구논단> 독립운동자와 친일파는 필체부터 다르다
  • 승인 2009.03.12 17:0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모든 생물은 자신만의 독립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소위 DNA검사를 통하여 모든 개체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자를 추적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를 확보하는데 유전자 검사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특히 살인사건의 경우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시신을 찾아내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유전자 검사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이 검사는 과거의 전쟁에서 희생된 군인들의 신원을 찾는데도 확실한 방법이다.

심지어 수천 년 전의 골동품이나 서화 또는 무덤 속의 비밀을 탐색하는 방법으로서도 가장 유효하게 쓰이고 있다. 이처럼 어느 누구도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유전자의 특성이라면 여기에는 뭔가 우리가 알아봐야할 문제점이 있다. 그것은 곧 개인마다의 성격차이로 나타날 수 있다. 성격은 그 사람의 특징이기 때문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이 분명하다.

어떤 사람은 성정이 급하고 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은 온순하고 착하기만 하다. 그래서 성선설과 성악설이 나왔다. 태어날 때부터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하고 독한 마음씨의 소유자도 있다는 것이 이들 이론의 근거다. 모두 일리 있는 견해인 것은 분명하다. 아직도 어떤 이론이 맞는 것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그렇지만 강호순 같은 살인마를 보면 성악설이 솔깃하다.

이를 밑받침할 수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이번에 출간된 `필적은 말한다.’라는 책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문제점의 일각을 파헤쳐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저자는 강력부 검사출신인 구본진 법무연수원 교수다. 그는 심리학이나 인체생리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사물에 대한 사색을 통하여 깊이 있는 철학적 이론을 연구해낸 사람도 아니다. 오히려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파헤치는 실무검사를 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책을 출판하기 전 10여 년 동안 부침(浮沈)을 거듭한 수많은 인사들의 글씨를 모았다. 그것은 검사의 업무수행에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미 고인이 된 인사들의 유묵을 많이 수집하게 되었고 실제적인 업무에 당장 쓰기 위해서도 진품여부를 가리는 밝은 눈을 갖게 되었다. 지난번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이라고 내놓은 수천 점의 그림들이 모두 가짜였다는 사실만 봐도 진위를 가린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추사선생의 글씨들이 대부분 위작이라는 말이 떠돌 만큼 유명인사의 작품에 대한 신뢰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구본진 교수는 글씨의 진품여부를 가리다가 엉뚱하게도 더 큰 발견을 한다. 그것은 글쓴이의 성격이나 지조와 같은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뉴턴의 행적과 비교된다.

그가 수집한 작품은 대략 900여점에 이른다. 엄청난 물량이다. 그 중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항일지사의 글씨가 600점, 나라를 왜적에게 팔아먹은 친일파인사의 글씨가 300점이다. 이 정도의 물량을 10년 동안 모으고 들여다봤으니 어지간한 전문가도 뒤따르기 힘들지 않겠는가. 특히 수사의 업무와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항일지사의 글씨와 친일파의 글씨를 낱낱이 대조해가며 그 특징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에 따르면 항일지사의 글씨는 전형적으로 작고, 정사각형 형태로 반듯하며, 유연하지 못하고, 각지고 힘찬 것이 많다는 결론이다. 글자 간격은 좁고, 행 간격은 넓으며, 규칙성이 두드러진다. 반면 친일파의 서체는 크고, 좁고, 길며, 유연하고 아래로 길게 뻗치는 경우가 많다. 글자 간격이 넓고, 행 간격은 좁으며, 규칙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이다. 특히 일부 친일파는 극도로 불안정한 필치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구본진은 “항일지사의 전형적인 글씨체에는 안중근 나철 김구 이상룡 김창숙 민필호 박은식 곽종석 이붕해 등이 속하고 친일파의 것은 조민희 김대우 조중응 권갑중 윤영구가 속한다고 밝히고 있다. 백범 김구의 서풍(書風)은 웅혼한 기상과 강인함, 철옹성 같은 기세, 웅장함이 느껴지고 매국노 이완용은 꾸밈이 많고, 가벼움이 무거움을 억누르며, 경박함이 미적표현을 압도한다고 밝힌다.

그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과 친일파 거두 박영효를 비교했다. 이승만은 외형적 꾸밈이나 필획의 교묘함보다는 강직한 선비의 기품을 살렸으며 박영효는 흐름이 매우 빠르고 선이 무너져 있다고 한다. 구본진이 간파한 독립항일인사와 친일파들의 글씨의 특징은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온 유전자가 달라서일까.

아니면 후대에 항일과 친일로 나뉘면서 각자의 사상과 이념이 달라져서일까. 참으로 절묘한 연구를 통하여 발표한 것이지만 충분히 수긍이 가는 대목이 너무 많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못했던 분야에 착상한 구교수의 연구 성과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연구에 착수할 일이다. 과학과 심리의 오묘한 조화를 이룬 서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