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입학사정관제 논란을 보며
<대구논단> 입학사정관제 논란을 보며
  • 승인 2009.03.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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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식 (대구대 교수)

대학 입학 사정관제 시행과 관련한 논의가 무성하다. 입학업무만 전담하는 전문가가 학생의 성적, 잠재력, 소질, 환경, 발전가능성을 종합평가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학 사정 관제를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행한 것은 2007년, 당시 교육부는 20억 원의 예산으로 대학의 신청을 받아 10개 대학을 선정해 시범 실시했다.

2008년에는 예산을 대폭 확대해 157여억 원으로 늘리고 선정대학도 40개교로 확대했다. 명분은 있다. 선발 방법을 다양화함으로써 수능과 내신의 점수 위주 선발에 의한 대학의 서열화와 획일화를 완화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그럼으로써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청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 가장 문제된 것은 교수 충원율 57.5%이상이어야 하고 대학에서 30%의 대응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명분에 호응한 측면도 있지만 정부 보조금을 한 푼이라도 더 타 오는 것이 학교 발전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교내 구성원들에게도 칭찬을 받는 일이기에 각 대학이 군침을 흘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아예 신청 자체를 하지 못한 대학들이 많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나 유수 사립대학들만이 이 열매를 선점할 수 있었다. 따라서 대학가에서 `어떤 대학은 배불러서 죽고, 어떤 대학은 배고파서 죽는다.’는 자조가 나왔던 것이다.

2008년 4월 제주에서 열렸던 `전국 대학 입학처장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돼 신청 조건의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발언들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요구들을 반영한 때문인지 교과부는 지난 10일자 보도 자료를 통해 2009년에는 예산을 236여억 원으로 대폭 늘리고 교수 충원율 57.5%라는 조건을 아예 삭제했다.

전국 40여개 대학을 선정하고 한 대학에 최대 30억 원까지 보조하겠다는 것이다. 한 대학 최대 20억 원은 2007년도 전체 예산보다도 많은 액수이다. 각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에 의한 신입생 선발을 대폭 늘리겠다고 너도 나도 발표하는 나서는 배경에는 바로 이 대목이 있다.

정부가 주는 예산이 탐이 나는 것이다. 교과부는 또 2009년도의 경우 2008년에 선정된 기존 40개 대학 중 20%선, 즉 8개 대학을 탈락시키는 대신 그 수 정도를 새로 선정할 것이라 한다.
입학사정관제와 관련한 여러 논란들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만약 8개교를 탈락시키는 대신 그 수 정도만을 새로 선정하는 방식이라면 이는 문제다.

교수 충원율 등 까다로운 신청 조건으로 신청 자체를 어렵게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이미 선정된 40개 대학은 `땅 집고 헤엄치기 식’인 것이다. 월드컵 축구나 테니스 등 그 어떤 스포츠 종목에서도 이런 식의 시드 배정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기존 40개 대학도 할 말이 있겠지만 조건이 바뀌었다면 완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보다 공정한 게임이 될 것이다. 더구나 명확한 평가 시스템이 아니라 산술적으로 8개 대학을 탈락시키고 새로 선정한다는 것은 우습다.

정책 입안만 있고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게 이 나라 여러 정책들의 최대 문제일진데 기존 40개 대학 중 8개교 정도만 탈락시킨다는 것은 너무나 도식적이고 산술적이다. 명확한 사후 검증 절차도 없이 30여개 대학은 엄청난 특혜를 받는 것이다.

`일반 전형’이 아니라 `특별 전형’, 즉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거의 마찬가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특별전형에서 적당히 몇 십 명 선발하고 거액의 정부 돈 받는 게 입학사정관제 아니냐는 비아냥거림들이 흘러나오는 판에 이 제도 시행에 대한 보다 검증된 평가 없이,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기존의 40개 대학 중 일부 대학만을 새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 기존 40개 대학 선정 자체가 여러 대학의 손발을 꽁꽁 묶어 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니던가? 공정성과 신뢰성 확보 등 입학사정관제 정착을 위한 사회적 환경의 조성, 3불정책 등 교육전반의 맥락에서 신중히 검토돼야 할 이 정책이 넘어야 할 산은 많고 높지만, 우선 이 문제부터라도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것인지, 돈 많은 치맛바람에서 용이 날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물론 중요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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