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번과 마녀
캘리번과 마녀
  • 황인옥
  • 승인 2011.12.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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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여 년 전 유럽에서 10만 명의 무고한 여성들이 ‘마녀’라는 죄목으로 죽어갔다. 집단적 광기의 대표적인 사례인 마녀사냥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석은 분분하다. 마을에 재앙이 일어났을 때 희생양이 필요했다는 사회학적 해석과 종교적 혼란기에 교회의 위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는 종교사적 견해도 있다.

또 17세기 독일이 30년 전쟁으로 남자가 절반으로 줄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구애(求愛)에 나서게 되고, 구애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 여성의 구애 행위는 용납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여성사적인 해석도 있다. 마녀사냥의 또 다른 이유로 경제적인 원인을 지목하는 학자들도 있다. 마녀사냥은 밀고자에 대한 보상, 혐의자 체포,호송,구금,감시, 고문, 판사 처형에 이르는 과정마다 비용이 발생했고, 그 비용은 당시에 경제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마녀사냥의 비용은 마녀로 지목된 여성의 몫이었고, 비용을 공제하고도 남은 재산은 마을 공동의 재산이 됐다.

여성운동가인 실비아 페데리치는 책에서 ‘마녀사냥이 촉발된 특수한 역사적 환경에 대한 탐구’, ‘왜 이러한 극단적인 폭력이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의문’을 제기하면서, 마녀사냥의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열쇠로 자본주의의 등장을 지목한다.

저자는 마녀사냥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남성, 국가, 교회가 저항적 프로레타리아 여성을 상대로 벌인 전쟁이며, 인클로저(영주나 대지주)가 농민들로부터 공유지를 박탈한 것처럼 여성들로부터 신체를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와 마녀사냥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맑스와 푸코의 이론을 비판적으로 끌어들인다.

저자는 맑스가 자본주의의 전제인 생산수단으로부터 생산자의 분리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시초축적 개념을 사용한 점을 주목하고, 맑스가 남성 임금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서 시초축적을 검토했을 뿐 당시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분석에서 누락시켰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맑스의 시초축적 분석에 여성의 관점을 추가함으로써, 자본주의가 마녀사냥을 통해 자본주의의 토대가 된 새로운 성적 분업을 발달시키고, 여성을 임금노동으로부터 배제해 남성에게 종속시켰으며, 여성의 신체를 노동자를 생산하는 기계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공유지로부터 소작농을 축출한 인클로저 과정은 일반적으로 농민들이 토지를 박탈당한 과정으로 분석 됐다면, 저자에게 인클로저 과정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무너지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설명된다. 저자에 의하면 여성은 토지에 대한 권리나 사회적 권력이 더 약했기 때문에 생존과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 공유지에 남성보다 더 의존했고, 그래서 공유지의 박탈은 여성들의 사회적 관계가 파괴되고 공동체를 기반으로 누렸던 사회적 지위가 무너지는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신체를 통제하는 근대 권력에 대한 미셸 푸코의 신체이론에 대해서도 견해를 달리한다. 저자는 푸코가 신체를 담론적인 실천에 의해서만 구성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으며, 권력의 원천보다 권력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묘사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푸코의 이론에서 신체 생산 권력은 독립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사회 및 경제적 관계에서 유리된 신비로운 것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책에서 여성과 신체 그리고 시초축적 문제를 중심으로 봉건제에서 지본주의로의 이행 문제를 재검토한다. 그리고 여성주의, 맑스주의, 푸코의 이론과 관련된 여성과 신체, 시초축적 개념이 작가가 제시한 ‘자본주의 치하 5백년이 지난 지금 많은 노동자들은 왜 아직도 빈민이나 마녀 아니면 범법자로 규정되고 있는지?’, ‘토지몰수와 대규모 빈민화는 여성에 대한 꾸준한 공격과 어떻게 연관되었는지?’,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발전과정을 재검토할 때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세 가지 의문들과의 상관관계를 살핀다.

실비아 페데리치지음/황성원?김민철 옮김/갈무리/2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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