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정동영의 지역선택과 박희태의 포기
<대구논단> 정동영의 지역선택과 박희태의 포기
  • 승인 2009.03.1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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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 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장)

어느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곳, 꾀복쟁이 친구들과 뛰어 놀던 곳, 여름이면 냇가에 나가 멱 감고 겨울에 방죽이 얼어붙으면 얼음지치기를 하던 곳, 나뭇가지 꺾어 새총을 만들어 참새를 쏘던 곳, 칡뿌리 캐먹으러 괭이 들고 산에 갔다가 뱀을 만나 혼쭐나게 도망친 곳, 닭서리나 수박서리도 심심찮게 하던 곳, 이런 곳을 가리켜 흔히 고향이라고 부른다.

고향은 따뜻하고 그리운 곳이기에 우리는 향수를 느끼며 가슴을 적신다. 시인들은 정감어린 목소리로 시를 읊었다. 노산 이은상은 `가고파’를 통하여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바다”를 노래했고 노천명은 `고향’에서 “꿈이면 보는 낯익은 동리, 우거진 덤불에서 찔레 순을 꺾다나면 꿈이었다.”고 애타는 마음을 표현했다.

흑인영가를 들어보면 더욱 절실한 면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그들은 이제는 대통령까지 만들어냈지만 아직도 `켄터키 옛집’이나 `스와니 강물’을 그리며 제2의 고향이 된 광활한 아메리카 대륙을 노래한다. “아! 그리워라 나 살던 곳, 그리운 내 고향”은 언제나 가고 싶은 곳, 항상 살고 싶은 따뜻하기만 한 고향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몸서리치며 열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고향을 찾는 인지상정을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 아름다운 고향의 그리움을 `지역감정’이라는 이름으로 악용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기의 고향을 사랑하다보면 무의식중에 다른 사람의 고향을 소홀히 생각할 수는 있다. 내 고향이 더 아름답고 먹을거리도 더 많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오히려 더욱 크게 권장하여 아름답고 정다운 고향 가꾸기에 많은 노력을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애향심은 주위를 풍성하게 만드는 활력소다. 다른 고장과 경쟁을 벌이는 것은 사회발전에도 일익을 한다. 이러한 차원을 넘어서 다른 사람의 고향을 비하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감정으로 나가면 이는 사회와 국가의 암 덩어리나 다름없다. 하나의 국가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국민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만 발전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이 세상은 삭막하기 그지 없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지역감정은 소위 영호남간의 갈등이다. 여기에 겻들인 것이 충청도 핫바지론 이다. 영호남의 도세는 광복직후까지만 해도 비슷했다. 현재와 같은 격차가 없었다. 인구수나 경제적인 면에서 각자 독특한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며 농업과 수산업 등 제일차산업으로 도세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영호남의 교류도 아무런 지장이 있을 수 없었으며 뱃길과 뭍길이 연결되어 상업적인 교류는 물론 혼사까지도 성행했다.
학문적으로도 영남학파와 호남학파는 쌍벽을 이루며 상호 교환방문 등으로 연마를 거듭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가를 이유가 없었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이 나타나면서 지역감정에 불을 붙였다. 선의적인 경쟁관계를 악의적인 배타심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애향심을 부추겨 타 지역에 대한 혐오감을 극대화시켰다.

감정은 감정을 유발하고 배양(培養)되기까지 한다. 극한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상대를 자극하고 자기지역을 잘못된 방향으로 똘똘 뭉치게 만든다. 이로 인하여 편파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역감정의 노예로 전락한다. 지각없는 몇몇 정치지도자의 요설(饒舌)에 끌려들어가 국민감정은 분열하고 대립감정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이 3김씨다.

이미 흘러간 인물이 되었지만 김영삼과 김대중은 지역감정으로 대통령까지 올랐고 김종필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들이 뿌린 죄과는 우리 민족의 뇌리에 속속들이 박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4.29 재보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정동영이 낙선한 서울지역구를 버리고 고향 전주를 선택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대표 박희태는 출마 여부를 밝히지 않고 머뭇거리더니 결국 입후보를 포기하고 말았다.

정치인들이 고향이라는 이름만으로 지역구를 결정하는 것은 손쉽게 당선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이미 전국을 상대로 하는 대통령후보나 여당대표가 아니고 지엽말단의 지역구 대표가 될 수밖에 없다. 정동영이나 박희태의 정치적 위상은 단순한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있는 사람이다.

차라리 정동영이 울산이나 경주에서 사자후를 토하며 지역감정 해소를 호소하고, 박희태는 전주에서 특유의 해학(諧謔)으로 호남의 민심에 호소한다면 비록 낙선하더라도 국민들에게 큰 공감대를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정치지도자로 성장하기까지 국민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되갚는 길은 이처럼 역경을 이겨내는 형극의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것이 과연 나 혼자만의 독백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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