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신간>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주목신간>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
  • 황인옥
  • 승인 2012.06.13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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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의 한국 사회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파토스(pathos·열정)’로 충만한 시기였다. 독재정권에 맞서고자 했던 공동체적 열정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구체화됐다. 그 결과 한국사회는 보다 민주화된 사회로의 이행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80·90년대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한국사회는 지난 20년간 산업사회에서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획일성이나 전체성에서 다양성과 개성화로 가치관의 변화를 겪었다. 그 과정 속에서 응집된 정치적 열정은 자취를 감춘 듯 보인다. 불과 2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파토스에서 ‘ 파치(apathy·무관심)’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원인은 중첩적일 것이다. 세대가 변했고, 불평등의 구조가 변했고, 구성원들의 열정을 하나의 집중시키기에는 열정의 대상도 다변화됐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모든 것이 변했다 할지라도 부동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본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전히 불평등하고 여저니 착취는 계속되고 있다. 정치에서 경제로 불평등과 착취의 형태만 변화했을 뿐이다. 억압과 소외로부터 비롯된 슬픔과 분노도 여전히 존재한다.

성취해야 할 목표가 있을 때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열정의 속성을 감안할 때, 아직 우리 사회는 열정이 죽을 만큼 완전하지도 완벽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의 아파치 현상은 파토스가 밑바탕에 강하게 깔려 있는 잠재된 아파치일 가능성이 짙다.

‘무한히 정치적인 외로움’의 저자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1980년대의 정치적인 열정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것은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의 정념의 키워드로 부대끼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파토스에서 아파지로의 변화를 거쳐왔지만, 슬픔, 외로움, 사랑 같은 정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정치적 열정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무관심으로 내재되기도 한다. 이러한 정념들이 있는 한 열정자체는 소멸되지 않는다. 다만 표출되는 형태의 변화가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작가는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지난 20여 년간의 ‘정치적인 것’에 대한 변화와 낙차를 슬픔, 외로움, 사랑, 위기감, 불안 등 정념의 키워드들을 통해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문화들을 넘나들며 조망한다.

그가 말하는 ‘정치적인 것’이란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의 삶의 반경이 어떻게 제한되고 있으며, 또 그러한 제한적인 삶의 반경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인식을 공유하거나 공유하지 않는가. 혹은 제한된 삶의 반경 안에 누구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가 하는 것들이, 곧 삶의 구체성 속에서 정치적인 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는 “공통적인 것이 급격한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자본제적 시스템은 우리 삶의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다. 내가 너에게로 가기 위해서는 시스템으로부터 통행증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렇게 우리들의 관계도 자연사 하고 있다”면서 신자유주의로 인한 인간소외를 지적한다.

그러면서 “외로움은 나와 타인과, 세계와의 소속여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반드시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사회적·정치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불안도 똑같다. 이러한 정념 속에 내재된 정치적인 것들이 과거에는 정치자체에 표출됐다면 오늘날에는 또 다른 형태로 문화적 장르 등에서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다”며 정치적인 파토스에서 문화적인 파토스로의 변화상을 진단하고 있다.

권명아지음/갈무리/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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