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대학 이렇게 커왔다> ③경북대학교(下)
<지역 대학 이렇게 커왔다> ③경북대학교(下)
  • 김승근
  • 승인 2009.04.1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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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개원' 새도약 날개 달다
33개국 220개 기관과 다양한 학술교류 협정
작년 상주대와 통합 매머드급 대학 성장
◆경북대학교, 복현동에 자리잡다

산격동과 복현동에 걸쳐 있는 경북대가 점유하고 있는 학교부지의 확충·정리를 위한 사업은 개교 이래 역대 총장 및 보직자들의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였다.

경북대 정문 대학상징탑.
부지계획선내의 토지 가운데 상당수는 사유지 뿐 아니라 도유지, 국유지로 돼 있어 개교시부터 1972년까지 전혀 학교 부지로 편입한 성과가 없었을 정도였다.

1972년 김영희 총장 취임 후 경북대는 교지정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김 총장의 장기 계획에 따라 경북대는 1982년을 완성연도로 당시의 정원의 2배인 학생 9천명을 기준으로 하는 시설계획을 만들었다. 교지는 당시 경북대가 소유하고 있었던 62만164㎡(18만7천599평)의 면적은 기준령의 17만3천935평보다 넓었으나, 당시보다 10년 후의 부족용지를 2만1천46평으로 예상해 북편과 동편의 인근지역의 땅을 매수해 확충하기로 했었다.

이 계획은 도시계획법에 근거해 1972년 5월 대구시에 신청해 그해 7월 건설부 공시로 확정됐다.

이에 대구시는 계획부지를 도시계획상 학교시설(경북대) 부지로 결정하게 됐다. 이러한 행정절차를 거쳐 확정된 교지의 면적은 22만9천793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정된 학교부지 면적 중 사유지, 시유지 등 합계 4만8천26평의 미해결 토지와 민가 129동이 여전히 미해결상태로 남아 있었으나 그 후 점진적으로 해결이 됐다. 현재 산격동과 복현동에 걸쳐있는 캠퍼스의 넓이는 78만2천40㎡(약 23만6천566평)이며 학교 부지내에 사유지는 없는 상태이다.

◆정문 상징탑에서 경북대의 역사가 묻어 난다

경북대 정문 로터리 조성공사는 1972년 11월 착공 부근 도로 개수공사와 함께 같은 해 12월 말까지 마무리됐다. 이어 만 5개월 동안에 완성한 경북대 상징탑은 높이 17.8m, 기단 직경 10m 규모로 건립됐으며 탑 주위에 각각 세로 2.1m의 청동제로 만든 교시 ‘진리, 긍지, 봉사’를 새긴 글자판을 부착했다.

탑의 맨 위에는 둘레 1.8m의 청동제 교표를 올려놓았다. 이 상징탑은 서울대 미술대학장이었던 김세중 교수의 작품이며, 판에 부착된 교시와 판신의 글씨는 김영희 총장이 휘필한 것이다. 상징탑 조성 공사를 할 때 탑신 아래 1m 지점에 먼 훗날 경북대의 역사자료로 이용되도록 당시의 학교사진을 모은 앨범, 학교요람 등 기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문서를 매장해 뒀다. 상징탑 완공을 기념하는 제막식은 1973년 3월 27일 있었다. 2000년 여름, 태풍으로 인해 탑 꼭대기의 교표가 유실됐다가, 2001년 9월 옛 모습으로 복원됐다.

◆엄격한 학생지도체제의 강화

1972년 10월 17일 비상계엄령 선포에 따라 전국 각 대학은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다가 11월 28일자로 대학휴교령이 해제됐다. 경북대는 1973년도부터 학생개별지도제를 만들어 학생들을 배정하고, 담당 지도교수이 서클과 문제학생 지도를 책임지는 체제를 두는 등 교육 중점을 안보교육강화, 학원 질서 확립, 새 가치관 확립 등에 힘을 쏟았다.
1973년 버팔로대학과 자매결연 기념식수 장면과 1970년 총학생회장 이취임식 모습.

또 면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수업평가제를 강화했다. 출석점검을 엄격히 할 것을 독려하고 종전에 2/3이상 출석하면 성적을 인정했던 것을 3/4 이상 출석해야 성적을 인정하도록 했으며, 매 과목당 3권 이상의 과제 도서를 지정해 학습 결과를 월 1회 평가하도록 했다.

학사경고제를 도입했으며, 교복착용을 장려하면서 장학생들에게는 의무적으로 교복을 입게 했다. 담당지도교수는 매월 2회 이상 학생들과 개별 면담 및 집단 지도를 한 후 지도일지를 기록해야 했으며, 학생지도상황 월말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학생생활기록부를 제출해야 했다.

◆국제교류의 첫 시작, 미국 뉴욕주립대

경북대는 현재 전 세계 33개국 220개 기관과 다양한 학술교류협정을 맺고 있다. 그 시초는 1973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버팔로))와의 자매결연이었다. 당시 뉴욕주립대학교의 로버트 엘 케터 총장이 경북대를 방문해 자매결연식을 개최했다.

당시 경북대는 뉴욕주립대학교와 교수, 학생의 교류를 비롯해 학술정보의 교환, 제분야의 공동연구, 학교 행정의 현대화와 대학 시설의 확충에 이르기까지 인적·물적 전 영역에 걸친 교류를 시도했다.

이후 많은 경북대 교수가 뉴욕주립대학교로 파견 됐으며 원서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1974년도에 160책, 1975년도 52책, 1976년에는 20책을 뉴욕주립대학교로부터 기증받기도 했다. 한편 경북대도 ‘경북대학교 논문집’, ‘경북대학교 석박사논문 발췌집’, ‘경북의대 잡지’ 등을 뉴욕주립대학교에 기증했다.

◆경북대 교수협의회와 교수회, 그리고 총장 직선제

1987년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을 주장하는 서명 운동이 전국 각 대학에서 전개된 후, 여러 대학에서 자체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으며 그 구체적인 실현의 첫 움직임으로 교수협의회가 구성되기 시작했다. 경북대는 1987년 10월 15일 대강당에서 제1차 교수협의회 총회가 개최돼 초대 의장진이 구성됨으로써 교수협의회가 출범했다.
최근 외국인학생들과 함께.

1989년 출범된 제3대 교수협의회는 총장 선출을 직선제로 하는 총장선거규정개정안을 승인해 1990년 6월 30일 각 단과대학 별로 마련된 투표소에서 제12대 총장후보 선출을 위한 교수들의 직접 선거가 열려 선출된 총장후보인 의과대학 의학과 김익동 교수가 총장으로 임명됐다. 이 때 투표율은 99.1%였다.

1999년 9월 22일에는 전자계산소 세미나실에서 개최된 임시총회에서 교수회 학칙기구화 관련 학칙이 의결됐다. 제12대 교수협의회는 1999년 11월 26일에 공포된 개정 학칙에 의거하여 같은 해 12월 14일 경북대 교수회 창립총회가 개최되면서 막을 내린다.

이로써 1987년에 창립되어 1999년에 이르기까지 12년간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경북대 교수협의회는 학칙으로 그 지위가 공인된 교수회로 그 역할이 승계된다.

◆대학 통합과 전문대학원의 출범

경북대는 2008년 3월 1일 상주대와 통합, 교수 1천112명, 직원 474명, 조교 222명 학생 약3만2천명의 메머드급 대학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경북대는 상주대와의 통합으로, 경상북도 내에 거점 캠퍼스를 마련함으로써 경북도와의 산학협력 발판을 마련했다.

상주캠퍼스는 기존 3개 단과대학 체제에서 생태환경대학과 이공대학 등 2개 단과대학 및 1개 독립학부인 보건복지학부로 개편됐다. 2009학년도 신입생은 양 캠퍼스 전 학과에 걸쳐 선발했다.
또 경북대는 특성화된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개원한 전문대학원으로 법학전문대학원, 의학전문대학원, 치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했다.

로스쿨은 올해 3월, 의학전문대학원은 2006년 신입생을 각각 받음으로 명실공히 법과 의에 있어서 전문가의 산실로 이미지를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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