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를 건 상대는 물리적인 소리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는지를 알려준다. 그 소리만으로 그와 나는 연결된다. 중요한 업무와 관련된 낯선 사람으로부터 온 전화일 경우에는 수화기를 귀에 꽉 붙여서 전화를 받는다. 오른 손으로는 메모지를 준비하고 펜을 집어 든다. 중요한 ‘소리’를 놓칠까봐 긴장이 된다.
순간,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진동을 한다. 유선 전화를 그대로 받으면서 휴대전화 모니터로 발신자를 확인해 본다. 아, 더 중요한 전화다. 동시에 양쪽 전화에 모두 응대해야 하는데, 컴퓨터 모니터 바닥에는 업무 협조 메시지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사인이 켜지면서 노랗게 깜박인다. 어느새 메시지는 몇 개가 쌓인다.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전자문서시스템이나 메일을 통해서도 온갖 업무 협조와 연락 사항들이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전화, 팩스, 온라인 메신저, 전자문서, 전자메일을 비롯하여 블로그, 홈페이지, 우편물, 퀵 서비스와 같은 옷을 입고 메신저들은 소리로, 이미지로, 영상으로, 간혹 실물로 마구 다가온다. 길을 걸을 때에도 잠을 자고 있을 때에도 메신저들은 나를 찾아온다. 이제는 이 메신저들을 만나는 것이 일이 되고 삶이 되었다.
예전에는 유선 전화도 너무 귀한 것이어서 아무나 함부로 사용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이웃집 형이 우리 누나에게 보내는 쪽지들을 직접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했었고, 또한 여자 친구 집 창문 아래에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별 이상한 소리를 내 가면서 전했었다. 어머니의 짧은 한 마디 말을 전해주기 위해 먼 친척 집까지 가기 싫은 심부름을 울면서 갔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삐삐’라는 문자호출기가 나왔을 때, ‘빨리빨리’를 ‘8282’로 ‘오빠 사랑해’를 ‘5454’로 전하고 받으면서 세상을 앞서간다는 기분을 만끽했고, 주머니에는 넣을 수 없던 그 큼직한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는 세상을 손아귀에 넣은 듯 뿌듯해 하였다. 최초의 전자메일을 ‘전송’ 했을 때와, 내 홈페이지를 찾아온 알지 못하는 사람과 처음 ‘접속’했을 때의 감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알게 모르게 많이도 변했다. 이렇게 돌아보니 그 변화와 함께 살아온 나 자신이 왠지 대견스럽게 느껴진다.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모니터 아래에서는 노란색 사인이 계속 깜박거리며 날 부르고 있다. 누굴까?
이상현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저작권자 © 대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