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홍대스타일 만나 ‘시끌벅적 도서관’ 탄생
대구-홍대스타일 만나 ‘시끌벅적 도서관’ 탄생
  • 황인옥
  • 승인 2013.03.1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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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 '홍대스타일' 문화기획자 조윤석씨와 '대구붙박이' 영화감독 장우석씨

프로젝트 '만권당' 감독.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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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홍대스타일’ 문화기획자 조윤석씨,   ‘대구 붙박이’ 영화감독 장우석씨
홍대 스타일과 대구 스타일이 뭉쳤다. 홍대스타일의 주인공은 30년 홍대 터줏대감인 문화기획자 조윤석씨이고 대구스타일은 대구의 젊은 붙박이 영화감독 장우석씨다. 이 두 사람이 구 KT건물을 리모델링해 새롭게 문을 여는 대구예술발전소의 정식 개관에 맞춰 열리는 ‘대구예술발전소:수창동에서’ 2부 행사의 일환인 도큐먼트 프로젝트 ‘만권당’의 감독과 참여자로 만나 한바탕 유쾌한 일들을 벌였다.

조 기획자는 자유로우면서도 넘볼 수 없는 내공의 소유자였고, 장 감독은 묵직한 열정의 해야 할 일들이 많은 젊은 기대주로 각기 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서로가 가진 개성은 더하고 부족함은 보완하며 프로젝트 ‘만권당’에서 시끌벅적한 도서관을 구현한 두 주인공을 봄볕이 한결 달달해지고 순해진 지난 15일 만났다. 그들이 제안하는 또 다른 방식의 책읽기의 실체가 궁금한 탓이다. 

조윤석씨는 홍대거리의 대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젊음의 거리, 예술의 거리인 홍대 앞에서 30여년을 거주하며 홍대 스타일을 만들어 온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문화기획자와 생태전문건축가라는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프로젝트 ‘만권당’의 감독으로 대구에 왔다.

장우석씨는 지역에서 대학을 나오고 젊은 예술인들의 사랑방인 물레책방을 운영하며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대구의 젊은 기대주다. 대한민국 대표영화 감독의 푸른 꿈을 안고 떠났던 파란만장한 서울상경기를 거쳐 지금은 지역에서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대구평화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대구 붙박이다.

이들이 ‘대구예술발전소:수창동에서’ 2부 행사의 도큐먼트 프로젝트 ‘만권당’에서 짝이 됐다. 조씨는 대구시의 러브콜로 서울 홍대 거리에서 대구로 공간이동을 하고, 대구의 장 감독은 조 기획자의 러브콜로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프로젝트 ‘만권당’은 대구의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인 대구예술발전소의 개관에 맞춰 진행되는 행사의 일환이다. 서울 홍대에서 문화기획자인 조윤석 등 3명이 참여하고 대구의 젊은 예술인 5명이 합류해 만든 홍대스타일과 대구스타일의 합작품이다.

대구예술발전소 내에 있는 60평 공간을 그들이 제안하는 21세기형 도서관으로 꾸미는 작업이 이 공간에 녹여낸 그들의 감성콘텐츠다. 책과 차와 교육과 예술인들의 만남이 있는 시끌벅적한 도서관이 그들이 ‘만권당’에서 펼쳐놓은 21세기형 도서관의 실체다.

“처음 프로젝트를 의뢰받았을 때 대구시로부터 페스티벌 중심의 공연과 전시가 복합된 홍대스타일의 커뮤니티아트를 제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구를 홍대스타일로 단순하게 이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대구가 문화적으로 저력이 있는 도시이고, 대구에도 젊은 예술인들이 많기 때문에 대구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담으면서도 현대적인 문화 공간으로 꾸며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대구시 관계자들을 설득했습니다.”(조윤석)

“처음 조윤석씨가 함께 하자고 했을 때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대구의 대표적인 근대건물에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이 개관하는 뜻 깊은 행사에 함께 하는 것도 그렇고, 또 서울 홍대의 대부와 함께 작업하는 것도 흥분되는 사건이니까요.”(장우석)

“막상 대구스타일을 만들자고는 했지만 사실 대구스타일의 컨셉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 됐습니다. 그래서 대구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죠. 인터넷을 뒤지고 대구시 관계자에게 질문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대구 문화의 저력이 응축돼있는 ‘만권당’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이거다 싶었죠. 대구문화의 역사적 정체성을 계승하면서도 21세기형 신문화를 가미해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컨셉을 잡은거죠. 그렇게 프로젝트 ‘만권당’이 시작됐습니다.”(조윤석)

“만권당은 이름 자체가 고유명사는 아니고 고려후기의 충선왕이 원나라 안에 세운 서재를 말합니다. 여기서 기초를 다진 성리학이 후에 조선 건국의 이념이 됐습니다. 그러다 1910년 독립운동가 고(故) 문영박 선생께서 문중 세거지가 있는 현재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마을에 ‘만권당’을 세우셨습니다. 전국을 돌며 모은 책들과 중국에서 배로 실어온 책들이 만권당을 채웠다고 합니다. 진귀하고 중요한 책들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학자들이 모여들었고, 일제강점기 때는 뜻있는 사람들이 만권당에서 ‘민족’ 개념을 정착시키기도 했다죠. 이것이 국채보상운동 등의 중요한 사건의 발판이 된 거죠. 지금은 고 문영박 선생님의 후손인 문태갑 전 서울신문 사장 등의 후손들이 만권당을 지키고 계십니다.”(장우석)

조 기획자와 장 감독은 프로젝트의 주제를 ‘만권당’으로 결정하고 대구 달성군 문씨 문중 세거지에서 ‘만권당’을 지키는 문 전 사장을 찾았고, 문 전 사장은 이들에게 고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조 기획자는 “문 선생님과 대화를 하면서 깜짝 놀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이 이미 30여 년 전에 제가 생각하고 있는 ‘문화예술 라이브러리’를 만들 계획을 했었더라구요. 굉장한 선지식(先知識)인이라고 느꼈습니다. 문 선생님의 조언과 아이디어가 이번 기획에 큰 힘이 됐습니다”며 문 전 사장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장 감독 또한 “문 선생님은 달성군에서 태어나셨고 서울신문사 사장을 은퇴하시고 다시 고향인 달성군으로 돌아와 문고를 지키고 계셨죠. 저희가 찾아뵈었더니 ‘젊은이들이 왜 책에 관심이 있어 찾아왔냐’면서도 굉장히 반가워 하셨습니다. 만권당에 관심이 있다는 저희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셨고 저희는 그분에게 굉장한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얻어 왔지요”라며 말을 보탰다.

우여곡절 끝에 ‘만권당’은 지역의 예술가들이 편하게 와서 좋은 책을 마음 놓고 볼 수 있고, 커피도 마시며 작업과 전시도 하고, 만든 작품을 판매도 할 수 있는 젊은 예술인들의 사랑방으로 탄생했다.

서로에게 덕담을 아끼지 않으며 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로 보이는 그들의 유쾌한 조합은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했다.

“처음 콘셉트를 잡자 대구시와 대구문화재단에서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 감독님을 만나게 됐죠. 저 나름대로 공부가 필요했고 대구의 젊은 예술가들과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데 당연히 대구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고, 그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싶었죠.” (조윤석)

“한때는 영화감독으로 성공해 보겠다고 서울에서 일해보기도 했지만, 지역에서 지역을 지키며 일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죠. 그래서 어렵지만 대구에서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게 됐고, 복합문화공간 헌책방도 운영하게 됐습니다. 지역의 어려운 젊은 예술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공간이었기 때문에 녹색평론사가 있던 지하 건물에 물레책방을 시작했죠. 공간은 많은 예술 인프라 중에서 첫 번째가 될 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런 공간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조 감독님의 제안에 흥분되지 않을 수 없었고 또 조 선생님과 일한다는 것은 굉장히 유쾌한 작업이었죠.”(장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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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큐먼트 프로젝트 /news/photo/first/201303/img_92303_1.jpg'만권당/news/photo/first/201303/img_92303_1.jpg' 전경
그들이 책이 중심이 되는 ‘만권당’에 투영한 콘텐츠는 ‘라이브러리 2.0운동’이다. 이 운동은 서울시청에서 만드는 도서관과 세계적인 예술기관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서관이다.

조 기획자는 “이제는 근대적 지식보다 탈근대적인 지식들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고 봅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재학습의 필요한 시기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껏 도서관이 갖고 있는 한계인 고정된 지식에서 탈피해 살아있는 지식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죠”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도서관은 독서실에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책이 읽는 곳과 책이 있는 공간으로 분리된 단순 개념이죠. 하지만 이제는 도서관의 개념이 바뀌고 있습니다. 도서관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능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자 장 감독도 질세라 “현재 ‘만권당’에는 2천 여권의 책이 구비돼 있습니다. 주로 예술관련 서적들이 많지요. 하지만 이 공간은 책도 주인공이지만, 그보다는 관계 네트워크에 더 중심을 두고 기획된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 책은 계속 추가될 것인데, 여기 추가되는 책들은 자신의 세계가 분명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이 읽었던 독서의 이력들을 추려 추천하는 책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어떤 책들을 어떤 순서대로 읽으면 가장 효율적인지를 모르는데, 먼저 읽었던 사람들이 자신의 독서 노하우를 전수하는 방식이지요. 책에 관계를 투영하는 방식이죠. 누가 어떤 책을 추천했는지에 대한 이력도 만들어 후배들의 독서 길라잡이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독서 정거장 같은 개념이 되는 것이지요”라며 만권당의 정체성을 덧붙여 설명했다.

그는 또 “현재의 만권당과 과거의 만권당의 만남의 장이 될 이 공간은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가절하 된 지역의 저력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그런 곳이 될 것입니다. 현재 대구에는 죽이되든 밥이 되든 지역에서 한번 해 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는 젊은 예술인들이 생겨나고 있거든요”라고 덧붙였다.

책과의 다양한 형태의 만남의 장인 ‘만권당’은 이번 행사기간인 내달 28일까지 운영되는 한시적인 프로젝트다. 이 공간이 계속해서 존속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행사가 시작되자 호기심을 안고 ‘만권당’을 방문하고 공간을 접해본 예술인들과 시민들의 반응은 뜨겁다고 한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구비된 책을 읽는 문화도 신선하고, 그룹 단위로 특정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좋다고 한다. 특히 어린이들 데리고 온 가족단위의 방문객들이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홍대거리 출신이 대구에서 한바탕 놀았다”는 조 기획자와 “대구 예술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의미 있는 공간과의 만남은 너무나 특별했다”는 장 감독, 이 두 사람에게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가 궁금했다.

조 기획자는 “이 프로젝트는 한시적인 것이지만. 미래는 모르는 것”이라며 “계획은 오래 지속가능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시민들이 좋아한다면 대구예술발전소가 시민들의 것이니 굳이 철거할 필요 있겠나 싶어요”라며 운을 뗀 후, “나는 홍대에서 오랫동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노하우를 활용해 지역의 문화에 뭔가 역할을 하고 싶었는데, 대구는 그 첫 작업이라는 의미가 개인적으로 있습니다. 대구의 좋은 분들을 만나 일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저는 행복했습니다”며 대구에서 작업한 소감을 밝혔다.

지역의 젊은 꿈나무인 장 감독 또한 “여기는 젊은 예술인들과 시민들의 공간이죠. 특히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젊은 예술인들을 위해 그들에게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1천원에 판매하는 등의 배려도 하고 있습니다. 또 입소문을 타고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오시는 가족단위의 시민들도 많지요. 이 분들을 위해 어린이들이 볼 만한 책들을 추가로 구비해 가족 테이블도 운영하고 있습니다”며 “젊은 예술인과 시민들이 소통하는 이런 공간을 만들고 함께 즐긴 것은 참 의미 있는 경험이었고, 이 일을 계기로 지역에서 어렵게 창작활동을 하는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과 관심도 확대될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습니다”며 시민들과 대구시 관계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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