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모지’ 대구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 새 章 개척
‘불모지’ 대구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 새 章 개척
  • 김종렬
  • 승인 2013.04.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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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 교수

새로운 일에 대한 희열로 류마티스 내과 선택

각종 캠페인 통해 관련 질환 홍보 중추적 역할

“20년간의 노력 결실 맺도록 지속적 연구할 것”
“‘류마티스 관절염’. 한번쯤을 들어봤을 법한 병이죠. 손·발가락, 무릎 등 관절이 부풀어 오르고 제멋대로 굽어버리면서 심한 통증까지 유발합니다.
나이가 들면 으레 앓는 병 정도로 생각해 왔죠.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난치병 또는 불치병으로 여겨졌죠. 만성병인 이 질환은 제 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장애를 가져옵니다.
특히 대부분의 환자가 여성이죠. 조기에 발견하면 완치는 어렵더라도 충분히 조절 가능한 질환인데 병이 있어도 그렇게 드러내지 않았죠.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진료를 통해 도움을 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최정윤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53). 그는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들을 양지로 이끈 주역으로 꼽힌다.

또 류마티스 관절염을 알리는 동시에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관절염 치료의 대가다. 그가 있는 대구가톨릭대병원 류마티스센터는 지방 병원 중 가장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최 교수의 경우도 한달에 1천여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한다.

20여년 전 ‘류마티스’ 분야는 의료계에서도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았다. 당시 류마티스 내과를 선택했던 최 교수는 “누군가 반드시 가야할 길이었다”고 다짐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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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윤 교수는 대구경북권역 유일의 류마티스 및 퇴행성 관절염전문질환센터가 지역 의료서비스 질적 향상뿐만 아니라 대구 의료관광사업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재미’…‘류마티스’ 분야 선택

하얀 가운을 입은 최 교수가 환자들과 상담을 하고 있다. 웃음에는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는 “많은 훌륭한 의사 선생님들이 계신데…아직 인터뷰 할 연륜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쑥스러워 했다. 병원 대기실은 많은 환자로 붐볐다. 최 교수가 있는 류마티스센터를 찾는 환자가 한 달에 3천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환자들의 입소문으로 문전성시다. 병원은 ‘버즈(BUZZ)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만큼 최 교수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는 ‘관계’를 쌓고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발길을 잇게 하고 있다.

“1990년대 초 류마티스 내과는 지역에서 불모지였죠. 아무도 가지않는 길이었습니다. 처음 류마티스 분야를 시작한다고 하니 난리가 났죠. ‘왜 굳이 그 길을 가려 하느냐’라고 만류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누군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일에 대한 ‘희열’, ‘재미’가 솟아 난 것이 류마티스 내과를 선택한 계기였습니다.”

최 교수가 류마티스 내과 전문의의 길을 걷는데 세 사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는 아버지와 박희명 전 경북의대 교수, 김성윤 원장을 꼽는다. “아버지께서 의사가 되라는 말씀은 없었죠. 휠체어를 타시고 정성껏 환자를 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의사의 꿈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아버지가 ‘의사의 길’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그의 스승인 박희명 교수는 ‘의사의 정신’을 일깨워 준 사람이다.

“박 교수님께서 1988년 정년 퇴임하셨으니 저는 마지막 제자쯤 될 겁니다. 환자에 대한 기초적인 진단으로 병을 알아내시는 교수님을 보면서 경외감, 경지를 읽을 수 있었죠. 명의(名醫)가 되기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내과를 선택한 뒤 우연한 기회에 한양의대 김성윤 교수를 만나게 된다. 김 교수와의 만남은 그의 면역학과 류마티스에 대한 연구를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된다. “처음 류마티스 내과를 개설했을 때는 저는 걸음마 단계였죠. 평소 면역학과 류마티즘을 공부하긴 했지만 임상경험이 부족했어요. 김 교수님을 찾아갔죠.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시술을 보고 다시 대구로 와서 병원 진료에 나서기도 했죠. 제가 선택한 것에 대한 배움을 그치지 않았던 당시는 즐거움과 기쁨으로 고단함도 잊게 했던 것 같습니다.”

◇알아야 치료…류마티스 관절염 환자 ‘양지’로 이끌다

그는 류마티스 내과를 선택하고 20여년 배움을 그치지 않는 이유가 류마티스 관절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 때문이라 한다.

“전 세계 의사들의 노력으로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나 아직도 그 원인을 시원하게 밝혀주지는 못하고 있죠. 저의 연구도 이러한 맥락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환자를 생각하면 안개 속 적과 싸움을 지속할 수 밖에 없지요.”

‘류마티즘’(Rheumatism)과 ‘류마티스 질환’은 같은 말로 쓰인다. ‘류마’(Rheuma)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흐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혈액 속에서 어떤 물질이 흘러나와서 관절이나 근육 등에 나타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여자의 손으로 먼저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불리죠. 남녀노소 상관없이 발병하지만 30, 40대가 약 80%를 차지하고, 여자가 남자보다 3~5배 정도 많이 발병하죠. 류마티스 질병 중 강직성척추염은 20대 초·중반의 남자가 많고, 루프스는 가임기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통풍성 관절염은 50대 남자가 많고, 최근에는 30~40대도 발병하는 추세죠. 퇴행성 관절염(골관절염)은 유전적 요인 등에 의해 발생하며 여자가 많이 나타납니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발병 2년 내 대부분 관절 조직이 파괴되기 때문에 병의 진행 속도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조기발견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100명 중 1명이 앓고 있을 만큼 흔한 질병이지만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죠. 류마티스내과가 있다는 것도 잘 몰라요. 젊은이들은 오랜 기간 증세가 나타나도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걸리는 병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치료와 예방을 위해 관절염을 제대로 알려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최 교수는 2006년부터 4년간 대한류마티스학회 홍보이사를 맡으며 류마티스 질환의 국민 홍보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 류마티스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를 위한 캠페인 ‘여류(女Rheu)사랑’, 관절염 주간에 시행된 ‘1·2·3 캠페인’, ‘골드링캠페인’ 등이 대표적이다.
/news/photo/first/201304/img_94759_1.jpg"[와이트인터뷰]최정윤대구가톨릭대병원교수/news/photo/first/201304/img_94759_1.jpg"
최정윤 교수는 류마티스 관절염 연구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었다. 그는 꾸준한 치료를 통해 적절한 관리 방법을 제대로 익히면 ‘완치’대신 ‘완화’된다는 걸을 알려준다. 최 교수가 원격진료를 하고 있다.

◇“류마티스 환자를 위한 ‘희망센터’ 될 것”

그의 이같은 꾸준한 노력으로 대구가톨릭대병원은 2009년 보건복지부로부터 대구경북권역 류마티스 및 퇴행성 관절염전문질환센터로 선정돼 올해 말 문을 연다. 전국 5곳의 전문질환센터 중 사립대는 대구가톨릭대병원 뿐이다. 그동안 최 교수가 류마티스 질환에 대한 전문적인 치료를 하기 위해 1994년 대구경북 최초로 문을 연 류마티스센터는 연 평균 3만5천여명의 환자진료 기록을 보유하는 전국 최상위 센터로 우뚝 섰다.

“기존 센터와 달리 신축 전문질환센터는 한 곳에서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원스톱 시스템으로 대기시간을 줄이고 편리하고 신속한 진료가 가능하죠. 또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의 협진을 통해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센터는 지역 의료서비스 질적 향상뿐만 아니라 대구 의료관광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류마티스 관절염은 장기관리 질환으로 의료관광에 어려움은 있죠. 무릎고관절 수술과 연계시키면 미국 등의 의료비용 대비 저비용으로 양질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합니다. 단 효율적으로 의료관광으로 잇기 위해서는 단계별 접근방법이 중요하죠. 대구경북의 의료수준이라면 성형·미용·모발 등 눈에 보이는 부분에서 류마티스관절염 등 장기간 관리질환까지도 의료관광으로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 교수는 많은 젊은이들이 대구를 떠나는 이유를 먹고 살기 위해서라고 한다. 과거 노동집약적 산업에서는 그나마 먹고 살 수 있었으나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수도권으로 가는 ‘탈 대구’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교육, 의료 등 대구의 강점을 살리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미네소타주(州) 로체스터 소재 메이요클리닉은 뇌 종양 진단·치료에 전문화된 병원으로 전 세계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환자들로 넘쳐날 정도로 유명하죠. 인구의 반에게 먹거리를 제공합니다. 대구경북도 BT 중 의료분야로의 발전 가능성은 크죠. 의과대와 약학대, 한의대 등 의료 R&D기관이 집적돼 있어 시너지가 가능할 겁니다. 의료 바이오, 제약 의료기기 등으로 특화된다면 ‘메디시티·첨단의료 대구’의 위상도 확립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는 미국의 BT 산업발전의 흐름이 보스톤에서 실리콘밸리, 샌디에이고(San Diego)로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샌디에이고는 농업·생명과학·전자·통신·관광 등 전 산업이 집약된 곳이라며 대구도 지역의 강점을 살린 특화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 교환교수로 연수를 떠나 1년3개월간 관절염 발병 경로 연구에 매진했다.

◇“환자와 함께 아픔 덜어내야죠”

원인이 정확하지 않다보니 완치라는 개념도 아직 없는 질병인 류마티스 관절염. 그의 각고의 노력도 의사로서 한계와 보람이 교차했다. 엄마와 딸, 한 집안 3대에 이어지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볼 때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치료가 잘 돼 병원으로 찾아온 환자를 볼 때면 보람과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의 연구의 중심에는 “환자’가 있었다. 학생에서 주부, 할머니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환자가 찾아온다. 꾸준한 치료를 통해 적절한 관리 방법을 제대로 익히면 ‘완치’대신 ‘완화’된다는 걸 알려준다. 장기 진료가 필요한 류마티스 질환의 특성상 환자는 그의 평생 벗이 되기도 한다.

최 교수는 대구경북 최초의 류마티스 및 퇴행성 관절염전문질환센터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 다짐했다. “문제는 시간입니다. 누군가 희생이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지난 20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겁니다.”

김종렬기자 daemun@idaegu.co.kr

▨최정윤 교수는 ‘류마티스 및 퇴행성관절염 전문질환센터’의 센터장으로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한 후 경북대 병원 내과 전문의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2002년 University of California in San Diego 교환교수로 있었으며 현재 대구가톨릭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류마티스학회 홍보이사를 4년간 역임했으며 ‘루푸스를 이기는 사람들’ 의학자문위원과 대한내과학회, 미국류마티스학회(ACR) 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미국 연수시절에는 관절염 동물모델 실험을 통해 톨유사 수용체(Toll-like receptor)에 대한 내용의 논문을 발표, ‘저널 오브 익스페리멘탈 메디신’(Journal of Experimental Medicine)에 표지로 실리기도 했다. 인용지수가 16에 이르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전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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