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가정의 달, 부모와 자식
<대구논단> 가정의 달, 부모와 자식
  • 승인 2009.05.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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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보름 전 칼럼에서 고 이의근 지사를 생각하면서 글을 썼는데 오늘은 9일 별세한 서강대 장영희 교수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필자는 장 교수와 일면식이 없지만 불굴의 투지로 아름다운 삶을 살고 간 그의 생애를 더듬어 보면서 5월 가정의 달에 노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변화를 조명해 보려고 한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혔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 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암 환자와 장애 우들에게 무한한 희망을 안겨주었던 고인이 병상에서 노트북 컴퓨터로 한자 찍고 쉬고 또 찍고 쉬면서 사흘 걸려서 엄마에게 남긴 100자 글이다.

두 다리와 오른 팔이 마비된 딸을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업어서 등· 하교 시킨 엄마, 진눈깨비 오는 날엔 딸을 학교에 못 데려다 줄까 봐 새벽 일찍 연탄재를 부수어 집 앞 골목길에 뿌렸던 엄마, 몸이 성치 못한 팔순이 넘은 엄마가 의식이 없는 딸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을 때 엄마의 손길을 느끼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엄마라고 부르던 장 교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감흥은 너무나 크다.

그는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세 번의 암 진단을 받았고 2년간 24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늘 희망이라는 글자를 가슴에 품고 학문과 문학에 도전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는 만큼 위대한 힘’ 이라고 암환자와 장애 우들에게 준 희망메시지와 청초한 글들은 그를 아는 이들의 가슴속에 아쉬움을 남겼다.

57세가 되도록 독신으로 살면서 그가 엄마에게 가진 애틋한 마음을 읽으면서 우리네 가정의 부모와 자식사이의 행태를 엿본다. 어버이날, 잘 살든 못살든 나이 든 부모들이 자녀들을 기다리는 마음은 다를 바 없다. 모처럼 자녀와 함께 외식을 하든지 용돈이나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은 누구나 갖기 마련이다.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식들이 부모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노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가 여느 사람들과 갖는 인간관계와 다를 바 없는 형태로 닮아가고 있다. 능력이 없는 부모는 자식에게 늘 움츠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결혼을 시킨 후에도 부모가 무엇이든 챙겨줘야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강박관념에 초조해 하기도 한다.

65세 이상 노인이 인구의 10%를 넘어선 고령사회에서 우리들의 가정풍속도는 날로 변질되고 있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성인남녀 1천1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것보다 정부와 사회가 부양해 줄 것으로 기대하는 쪽이 많아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는 하는 것을 당연시 해 온 가족문화가 붕괴되고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관심이 점차 희박해 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자기가 살던 방에서 가족들과 손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는 것이 소원이라고들 하지만 이 같은 부모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줄 자식들이 몇이나 되겠나. 모든 것을 세상의 변화로 돌리면서 쉽게 쉽게 대응하는 것이 우리의 자식들이다.

앞으로 장수하는 노인이 점점 늘어가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정상적 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리라고 믿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부모니까 의례적으로 할 뿐이지 마음은 다른데 있다면 그것은 옳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라 볼 수 없다.

전통적인 효의 개념을 굳이 찾을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은 최소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부모들 역시 그에 상응한 좋은 마음을 가질 때 좋은 가족관계가 형성된다. 요즘 어디를 가도 복지를 뜻하는 웰빙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사회구성의 일차적 집단인 가족들의 웰빙은 가정 내의 민주적 질서 틀에서 만들어 진다.

지금까지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이 저소득층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재가복지가 강조되는 시점에서 가족복지 중심의 노인 정책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물질적 복지보다 정신적 복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도 중요하다. 영원한 문학소녀, 장영희 교수가 엄마에게 남긴 짧은 글을 읽다가 우리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더듬어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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