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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음악.미술

미완성 같다구요? 기본 회화 변주했을 뿐

기사전송 2018-03-22, 21: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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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이 만난 작가> 채온
“못 그린다”는 관객의 말
애써 부정하지 않는 건
단순 재현 넘어섰기 때문
형식 탈피한 즉흥적 붓질
감정과 사유 흔적 담아내
유령들의밤-오일
채온 작 ‘유령들의 밤’


작은 캔버스에 큰 여백이 이채롭다. 넓은 여백을 주시하던 시선이 화면 중앙의 무채색 실루엣과 마주쳤다. 형체가 뚜렷한 실루엣은 인체이다. 인체 실루엣에는 표정이 생략됐다. 작가는 절제된 표현의 실루엣이 가족을 은유한다고 하였다. 아련한 감성을 건드리던 가족 이미지가 다소 문학적이다. 2015년에 첫 대면한 작가 채온의 그림에 대한 소회이다. 당시 가창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던 채온은 20대 신진작가였다. 며칠 전 다시 그를 만났을 때는 30대 청년작가로 성장해있었다. 작업실 두 칸엔 회화(繪畵)작품들이 빼곡했고 정돈되지 않은 화구가 그간의 분주했을 작가의 행보를 고스란히 비추어준다.

“그림 참 못 그린다”는 어느 관람자가 채온의 그림을 보고 한 말이다. 애써 부정하지 않는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완벽한 재현에 몰두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하여 인물과 풍경 할 것 없이 그의 그림에는 온전한 형태가 하나도 없다. 비례나 양감은 물론 안정된 구도에서도 몇 발작 비껴나 있다. 색채 역시 현실재현에 가까워질 길이 아득해 보인다. 때문인지 채온의 작업실에는 미완성 같은 완성작들이 즐비하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잘’과 ‘완성작’의 기준이다.

고전 고대의 회화가 온전한 형태나 비례미를 예술의 가치로 여겼다면 현대미술은 안정감과 아름다움만을 예술적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19세기까지의 회화는 형과 색이 실제 사물에 근접해야했고 음영의 조화는 물론 탁월한 묘사력을 으뜸으로 쳤다. 하여 고대나 19세기의 잣대로 채온의 회화를 평가한다면 미완성작으로 치부될 만하다. 관람자가 채온의 그림을 보고 ‘못 그린다’고 한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채온의 예술신념은 고대나 19세기 회화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꾸준히 미완 같은 화법을 추구한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이브클라인(1928~1962)은 캔버스에 파란색을 칠해 놓고 <IKB (International Klein Blue)>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브클라인의 파란색이라는 뜻이다. 마티스(1869~1954)는 형과 색을 분리시키고 건축적인 요소(공간감)도 배제시켰다. 형과 색을 재현의 도구로 삼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제리코(1791~1824)는 달리는 말의 두 발을 공중에 나란히 그렸으나 카메라로 촬영된 경주마는 제리코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반면 마그리트(1898~1967)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를 새겨놓았다. 시각적 판단을 환기시키려는 의도였다. 상기한 작가들의 작품은 순수의 의미를 되새기며 재현의 원리에 문제를 제기한다. 더하여 시각상의 오류를 지적하고 실제와 앎의 차이를 확인시켜준다.

산개-오일
채온 작 ‘산개’


앞서 나열한 작가들의 작업과 채온의 작업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에서 서로 만난다. 모두 새로운 시각이 인식의 체계를 넓혀놓은 예이다. 우리의 시각은 여전히 알고 있는 것으로 보려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미술작품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의 변화에 맞추어 표현 방식도 바뀌어왔음을 인지하길 원한다. 사실 그림은 허구이다. 특히 시각적이지 않은 것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다. 하여 마크 로스코(1903~1970)나 바넷 뉴먼(1905~1970)이 형태와 색채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세계에 몰입한 것처럼 채온은 물감의 물성으로 인간의 내적 감흥을 건드린다.

회화의 당위성을 ‘재현’에 두지 않는 채온의 회화는 재료의 고유한 물성탐색으로부터 행위 그 자체를 주시하게 한다. 그의 회화적 행위는 수순처럼 눈속임(원근법, 음영법, 투시도법 등)법을 버렸다. 형태를 허물어 유사를 포기하고 색의 층차로 감각을 재생시킨다. 물감의 두께로 거친 마티에르만 남기기도 한다. 나아가 붓의 자유로운 운용으로 회화의 순수성을 유희한다. 모더니즘적 성향이 다분한 그의 이러한 작업에서 감지되는 것을 하나 더 꼽으라면 심리적 고백이 아닐까 한다. 형식에 함몰되지 않은 즉흥적인 붓질에서 간간이 읽히는 심리적 고백이 일면 모순적이다. 붓이 지나간 자리마다 남겨진 물감의 결에서 내적 갈등과 치열한 사유의 흔적이 색으로 받아 쓴 것 같은 흐린 대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채온의 심리적 고백은 무심한 듯 뚜렷한 존재를 체험하게 한다. 이를테면 제목처럼 <Repainting>, <shove> 시리즈가 물성의 유희라면 <밤이 되는 시간>, <산개>, <유령들의 밤>과 같은 작품에는 초기작에서와 같은 문학성이 잔존한다. 몽환적인 낯빛의 <독일남자>와 <독일여자>도 가려진 듯 뚜렷한 의미의 상징체이다. 작가 채온의 순수한 작업이 모순과 만나는 지점이다. 채온의 회화는 물성의 유희와 내용의 서술 사이에서 발생되는 미묘한 교차점이 딜레마인 듯하다. 어쩌면 그 반대일 수도 있겠다. 다원화 된 현대미술은 균형과 불균형의 묘한 긴장감 사이에서 잉태된 틈새예술에 주목하곤 한다.

톨스토이(Leo Tolstoi)는 <예술이란 무엇인가(1896년)>에서 “움직임이나 선 색채 소리 또는 말로써 표현되는 형태에 의해 자기 자신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다른 사람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예술적 행위다”라고 하였다. 채온의 예술행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화가에게 영감의 원천은 자기 직시로부터 출발한다. 작가 채온은 자기 자신의 근본적인 감정에 주목하며 가식 없는 내면을 화면에 쏟아 붙는다. 순수의 유희와 심리적 고백 사이에서 잉태된 그림(그리움의 준말)이 작가 채온의 차별화된 회화이다. 과정임을 감안하고라도 그의 ‘못 그린 그림’이 묘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출력-1
채온
한남대학교 조형예술대 졸업, 2017 갤러리DM ‘부곡 풍경’·2016 이브갤러리 ‘내가 본 것들’ 등 개인전 3회, 2018 스페이스K ‘COCOON 2018’·2017 표갤러리 ‘ART LAB’·2016 하이트 컬렉션 ‘말 없는 미술’ 등 단체전 5회, 서울예술재단 포트폴리오박람회 평면부분 최우수상 수상.

미술학박사 shunna9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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