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모순과 반어(反語), 그리고 독도
일본의 모순과 반어(反語), 그리고 독도
  • 승인 2014.04.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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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영
대구대 법학부 교수
세기의 석학 에드워드 카(E. H. Carr)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갈파했다. 하지만 우익보수의 길을 가는 일본은 애써 이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문부과학성 검정을 통과한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가 그 예다. 이 교과서는 일본의 대한제국 강제 병합과 식민지화로 인한 피해 등 일제 강점에 관련된 부정적 내용을 대폭 삭제했다. 게다가 독도는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함으로써 상호작용을 통한 반성의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일본의 미래세대는 앞으로 4년간 이 왜곡된 교과서를 통해 일본과 한국의 역사를 배우게 된다. 역사적 과오에 대한 기억을 거부하고 평화헌법을 포기하면서 추구하는 일본의 미래는 허망한 꿈일 수밖에 없다.

역사적 사실은 일본이 전범국가라는 것이다. 침략행위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모든 국가와 국민들에게 잔인하고 혹독한 범죄를 저지른 국가다. 그 중에서도 제국주의 일본이라는 악의 중심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우리나라는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한 피해를 당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의 첫 번째 조치로 울릉군의 행정관할 구역이었던 석도(石島-독도)에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붙여 자국영토로 편입했다. 더 나아가 한반도 전체를 무력으로 강점하고 우리 선조들을 머나먼 사할린의 얼어붙은 광산에 징용으로, 지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동남아의 일본군부대에 정신대로 내몰았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이랄까. 우리 민족과 세계인들에게 치욕과 통한의 아픔을 뼛속깊이 심어준 일본에게 패망의 순간이 도래했다. 동경에 국제군사법정이 설치되고 일왕을 비롯한 전범들을 처벌하고 정의를 회복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야만의 시대가 끝나고 이성의 시대가 왔다고 환호했다.

그런데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모순과 반어에 기초한 전후 처리가 이루어지게 된다. 가해자는 분명히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한 일본의 국왕과 전범들인데 동경군사법정에서 물타기(?)가 시작된다. 전범에 대한 재판을 승자의 논리에 따른 보복으로 주장하고 정의의 심판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당한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자들의 참상은 논의 조차되지 않았다. 일본의 국체(國體)로 숭상되던 일왕과 그 가족은 군사법정에서 언급되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인정된다. 동경군사법정은 히로히토 국왕이 살아있음에도 제외하고 기소된 범죄자 중 7명에게만 사형을 선고하였다. 이미 자살한 히틀러 외에 기소된 범죄자 중 12명에게 사형을 언도한 독일의 뉘른베르크 군사법정과 비교되는 숫자다. 전범국가 일본의 몸체는 손대지 않고 깃털만 털어낸 것이다.

일본의 전후책임과 관련된 모순과 반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국가 한국의 전쟁이라는 비극이 가해국가 일본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은 대일평화조약의 기조를 징벌조약에서 관용조약으로 수정했다. 일본의 전쟁책임 규명과 일본 영토에 대한 엄격한 규정 대신 일본을 자유세계의 평등한 일원으로 조속히 복권시키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전후 일본의 영역을 규정하면서 상충되는 영유권 주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도에 대한 규정을 포함하지 않았다. 동 평화조약의 초안 작성과정에서 미국의 독도 문제에 대한 입장 변화에 대해 미 국무부 내에서도 우려가 제기되었다.

당시 국무부 정보조사국 지리전문가였던 보그스(S. W. Boggs)는 일본 외무성이 간행한 출판물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 영토로 포함되어 있지만 한국 영토로 인정해주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조약 초안 작성과정에서 일본 외무성이 제공한 영토문제 자료집을 참고해 독도 영유권에 대한 입장을 변경했다. 결과적으로 동 조약은 일본 침략전쟁의 피해국가인 한국의 독도에 대하여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역사는 정의보다 평화를 앞세운 전범의 처벌이 그리고 징벌보다 온정주의에 경도된 평화조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연합국은 독일 국제군사법정을 통해 철저히 독일의 전범을 처벌하고 독일의 영토를 동독과 서독으로 분할함으로써 징벌을 통한 정의를 구현하였다. 이는 독일의 진정성 있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배상의 기초를 조성하였다.

독일은 지금 유럽연합의 중심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반면 연합국은 일본에 대하여 관용적 태도에 기초하여 전후책임을 추궁하였다. 피해국가인 한국의 영토는 남북으로 분단하고 가해국가인 일본의 영토는 온전히 보전해 주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하였던 것이다. 온정주의에 기초한 평화추구가 일본으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거부하고 국가주의에 입각한 재무장화를 추구하는 기초를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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