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말과 청마를 다시 생각하며
가라말과 청마를 다시 생각하며
  • 승인 2014.01.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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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
중리초등학교장
설을 며칠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기 위하여 황매산을 올랐다. 높이 1천108m 정상엔 무학굴이 있었다. 굴속에는 가뭄이 심한 겨울임에도 고드름이 거꾸로 자라고 있었다.

굴 속 어디에도 물이 떨어지는 곳도 없고 물이 솟아오르는 곳도 없었다. 기이한 현상이고 신비한 일이다.

흙먼지가 푸석푸석 날리고, 멀리 보이는 산들은 미세먼지 때문에 희뿌옇게 보였다. 그런데 무학굴 입구만은 맑은 기운과 신선한 공기가 주입되는 듯하였다.

합천군 대병면 성리에서 무학대사는 태어났다고 한다. 지금의 합천댐 하류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 황매산의 이 굴에서 수도를 하였다고 한다. 수도를 하던 무학을 위해 밥을 해서 굴을 향하여 오르던 어머니는 뱀에 놀라서 가시에 찔리고 칡의 줄기에 휘감겨 큰 병을 얻게 된다. 병은 100일 동안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여 나았다고 한다. 그 후부터 황매산에는 뱀이 없고, 칡이 없고, 가시나무가 없는 삼무의 산이 되었다고 한다.

산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봉우리 세 개가 보인다. 이름은 황매삼봉이다. 이성계와 무학사이의 이야기에는 숫자 삼의 이야기가 유독 많다.

이성계는 어느 날 기이한 꿈을 꾼다. ‘1만 집의 닭이 일시에 울고, 1천 집의 다듬이질 소리가 일제히 났으며, 낡아 쓰러져 가는 허름한 집에서 서까래 세 개를 지고 나왔다.’고 한다.

무학 대사는 닭 우는 소리는 ‘꼬기요(高貴位)’이니 높고 귀한 지위에 오를 것이요, 다듬이 소리 ‘오근당(御近堂)’은 모든 사람이 가까이 모일 것이요. 서까래 세 개를 사람이 지는 형상은 임금 ‘왕(王)’이 된다고 해몽을 해 주었다.

왕이 된 이성계는 설봉산의 삼인봉에서 무학을 찾아낸다. 무학은 서울의 위치로 인왕산을 진산, 백악산을 좌청룡, 남산을 우청룡으로 삼을 것을 권한다.

그러나 삼봉 정도전은 ‘남향하여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건의를 하여 받아들여진다. 무학은 내심 왕조를 불안해하며 이성계와 헤어진다.

앞선 등산객이 황매산의 비로봉은 어디냐고 묻는다. 우리나라의 산 중에서 제일 많은 봉우리가 비로봉이다. 비로(毘盧)라는 말은 불교에서 온 말이다. 금강산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도 비로봉이다. 성호 이익도 화엄경에는 동북쪽 바다 가운데 금강산이 있고, 1만 2천의 보살이 있어 지혜를 설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1만 2천의 산봉우리가 있는 줄로 잘못 알고 있단다.

그렇다면 갑오년 청마의 해도 과연 있는 것일까?

음력 정월 초하룻날은 ‘설’이며, 말의 해 갑오년이 된다. 정확한 갑오년의 계산법은 별도의 방법이 있다고 하는데 조금은 복잡하다.

새해는 익숙하지 않은 낯설음이 있다는 ‘낯설다’에서 ‘설’이 되었다고 한다. 또 새해 새날이 ‘선다’는 의미가 연음되어 ‘설’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한자어 삼가고 조심한다는 신일(愼日)의 ‘섧다’에서 ‘설’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양력으로는 한 달이 훌쩍 지나갔으니 말의 해도 빠르게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 때 바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제주도에서 기르는 조랑말 중에서 진상되는 최상의 말은 털빛이 온통 검은 가라말이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온 몸의 털빛이 검붉고 윤기가 흐르는 청가라말이 최고의 말이란다.

알려진 명마중의 명마는 적토마(赤兎馬)이다. 이 말은 털이 붉으며 토끼처럼 재빠른 말이다. 삼국지를 읽어 보면 여포가 타다가 나중엔 관우가 탔는데 매우 빠른 말일뿐만 아니라 관우가 죽자 의리를 지켜 주인 따라서 죽었다고 한다.

청룡언월도를 들고 적토마를 탄 미염공 관우의 불그스름한 얼굴 모습을 상상해보라. 저절로 “야아!”하는 탄성이 나올 것이다.

열자의 책에는 빈모여황(牝牡驪黃)이라는 말에 대한 고사가 나온다. 구방고라는 사람은, 말의 속 내용을 살피고 겉모습은 잊어버리며, 보아야 할 것만 보고 살피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않고, 말의 중요한 특징을 찾아내어 가라말을 구별하였다는 내용이다.

사물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면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다. 가라말은 우리가 말하는 갑오년의 실질적인 말이며, 청마는 겉의 털에 푸른색을 칠한 말이다. 설날의 덕담으로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면을 살펴보자는 이야기도 좋은 교훈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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