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사람들이 코끼리 몸을 만져보고 제각기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코끼리 몸을 만져보고 제각기 말한다
  • 승인 2017.11.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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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 교장)

유치원 아이 두 명이 어디론지 쏜살같이 내달린다. 아이들은 그냥 걷는 법이 없다. 한 아이가 “오늘 ‘소가 된 게으름뱅이’뮤지컬이 참 재미있었다”고 외친다. 앞서 가던 아이는 “재미있었던 것이 아니라 감동적이었어! 책에는 마왕이 없는데 뮤지컬엔 마왕이 나타나서 소가 된 게으름뱅이에게 혼낼 때 눈물이 났어”하고 대꾸했다.

집을 나선 게으름뱅이는 길에서 노인을 만난다. 그는 노인이 주는 소의 탈을 쓰고 소가 된다. 시장에서 농부에게 팔려가 매를 맞으며 일을 한다.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죽을 결심을 하고 밭에 있는 무를 먹는다. 무를 먹은 게으름뱅이는 다시 사람으로 환생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는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뮤지컬에선 책에 없던 마왕이 나타나 게으름뱅이를 엄청스럽게 혼쭐을 낸 모양이었다. 두 아이는 이 장면을 연상해 보았던듯하다. 두 아이가 말하는 ‘그냥 재미’와 ‘감동적’인 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말의 뉘앙스가 각각 다르다.

‘군맹평상(群盲評象)’이라는 말이 열반경에 있다.

옛날 어진 왕이 신하들에게 정사에 대해지시를 하면 신하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을 망친 신하들은 사사건건 마왕(귀신)때문이라 했다. 오랫동안 고민을 하던 왕은, 어느 날 신하들을 모아 놓고 코끼리를 끌고 오게 했다. 그리고 여섯 명의 시각장애인들을 들어오게 하여 그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고 평가하도록 하였다.

코끼리의 상아를 만져본 사람은 무와 같다 했고, 코를 만져본 사람은 커다란 강삭(강철 철사를 여러 가닥 합쳐 꼬아 만든 줄)과 같다했고, 귀를 만져본 사람은 곡식을 까부는 키와 같다했고, 다리를 만져본 사람은 곡식을 찧는 절구와 같다 했고, 배를 만져본 사람은 큰 항아리와 같다 했고,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동아줄과 같다 했다.

왕은 신하들에게 “어리석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주관에만 치우쳐 큰일을 아주 잘못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이 말을 들은 신하들은 그 동안 왕의 지시와는 다르게 시책들이 추진된 것은 마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편견이었던 것을 크게 반성하고 부끄러워했다. 군맹평상(群盲評象)은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 몸을 만져보고 제각기 말한다’는 뜻이다. 군맹(群盲)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비유다.

홍명희는 임꺽정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처음 부문에 수호지에 나오는 복마전(伏魔殿)의 이야기를 꺼낸다.

송나라 인종 때 전국에 전염병이 돌았다. 인종은 용호산에 사는 장진인에게 전염병 퇴치를 요구하기 위해 홍신을 사신으로 보낸다. 경내를 둘러보던 홍신은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는 전각을 보게 된다. 홍신이 복마지전의 석비를 파내던 중에 굉음과 함께 마왕 108명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세상 바깥으로 나온 마왕 108명은 언제나 큰 소동을 일으킨다.

복마전은 원래 마왕이 숨어있는 전각이다. 그 곳은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악의 소굴이다. 부정부패를 일삼는 비리의 온상지를 일컫는다.

요즘 언론에는 부정부패를 일삼은 ‘적폐’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온다. 텔레비전을 봐도 신문을 봐도 붙잡혀가고 아우성치는 모습들이다. 차고 넘치는 소식들이 적폐이다. 모두가 복마전이다.

아무것도 모르고 쏜살같이 내달리는 유치원생들이 “적폐도 마왕이지요?”하고 묻는다면, 글쎄…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냥 재미, 감동적’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에게 마냥 부끄럽기만 하다.

임꺽정에는 삼국지의 ‘합한 것이 오래되면 반드시 나눠지고, 나누어진 것이 오래되면 반드시 합해진다’는 말이 있다. 흩어진 사람들이 또 다시 모여서 합해지면 복마전의 마왕이 또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장자가 말하길 백조는 매일 목욕을 하지 않아도 희고, 까마귀는 매일 검은 물감을 들이지 않아도 검다고 했다. 그러면서 희고 검고의 바탕을 가지고 좋고 나쁜 것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남들이 겉보기에 좋은 명예도 전혀 뽐낼 것이 되지 못함을 말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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