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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내 비록 잡혀서 죽을지언정 - 담비와 봉황의 자존심

기사전송 2018-04-26, 21: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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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후섭 아동문학가
교육학박사
사람에게서 자존심을 빼어버리면 그 모습은 어떻게 변할까요? 유럽 속담에 ‘이익에 손해를 본 사람보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더 위험하다.’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북유럽에는 전해오는 ‘숲 속의 흰 담비’ 이야기도 이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이 담비는 눈이 많은 곳에서 살아가는 만큼 그 털이 희기로 이름난 짐승입니다. 그리하여 눈부시게 흰 털을 자랑하고 있는 이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많은 귀부인들이 이 담비의 모피를 좋아하였기에 매우 비싸게 거래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냥꾼들은 기를 쓰고 사냥에 나서지만 이 담비가 워낙 영리한데다 재빨라서 쉬이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경험한 끝에 묘수를 찾아내었습니다. 먼저 담비가 숨어사는 굴을 발견한 다음 그 입구에 시커먼 검정을 잔뜩 발라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사냥개를 풀어 담비를 쫓게 합니다.

숲속에서 발견된 담비는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본능적으로 자기 집으로 달려가는데 담비들만 다니는 낮은 나무 밑으로 달리기 때문에 사냥개도 쉽게 따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굴 앞에 다다른 담비들은 입구에 발라놓은 검정을 보고는 돌아선다고 합니다. 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사냥개와 맞서겠다는 자세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자존심이 아닐 수 없습니다.

봉황(鳳凰)도 이와 비슷한 자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봉기천년(鳳飢千年)이라도 기물탁식(忌物濁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봉황(鳳凰)은 천 년을 굶어도 버려진 곡식을 함부로 먹지 아니 한다는 뜻입니다. 즉 봉황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귀한 대 열매인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 아니 하고, 천릿길을 날아도 오동(梧桐)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아니 하며, 수천 줄기의 샘물이 있다 하더라도 영천(靈泉)이 아니면 마시지 아니 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러한 봉황을 기다리며 집 둘레에 대(竹)와 오동나무를 심고 가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사군자(四君子)의 매란국죽(梅蘭菊竹)은 모두 선비들이 좋아하는 나무와 꽃들로서 선비들을 상징하지만 특히 대(竹)는 ‘비록 꺾일지언정 휘어지지는 않는다.’하여 더욱 선비의 지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찍이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존심은 오전에는 풍요, 오후에는 가난, 밤에는 악명과 함께 한다.”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자존심은 아름답고 꼭 필요한 것이기는 해도 지나친 자존심을 경계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옛 중국 제(齊)나라에 검오(黔敖)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흉년이 들자 곡식을 꺼내어 밥을 지어 굶주린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한 행인이 지나가자 검오가 불렀습니다.

“아이고, 며칠 동안 굶었소? 이렇게 불쌍할 수가! 자, 이리로 와서 밥을 좀 드시오.”

그러자 그 행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그렇소. 나는 불쌍하오. 나는 먹으라는 밥은 먹지 않았기에 이 꼴이 되고 말았소. 그래도 나는 남이 먹으라는 밥은 먹기 싫소.”

그러면서 이 행인은 끝내 밥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가지 못하여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존심을 어디까지 내세워야 할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자존심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세야말로 남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간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옛 성인들이 겸손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겸손한 것은 결코 비굴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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