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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대구논단

한반도, 평화의 휘몰이

기사전송 2018-04-29, 20:5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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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윤 시인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다. 이리 될 줄 알았다. 주변국들을 배제한 오롯이 남과 북의 정상이 손을 잡은 날은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미 예견된 일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과거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담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입에 담기도 어려울 만큼 가치를 폄하하고 매도하는가하면 굴욕적인 외교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식의 발언들을 하는 소위 북한 전문가들의 글을 보면서 절망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도무지 통일의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회담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수가 없다.

소통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안의 욕심을 드러내기 전에 먼저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양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바람도 다른데, 어찌 모두를 만족시킬 수야 있겠는가. 하지만, 내 것을 움켜쥐고 어느 하나 손해 보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상대도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당장의 손익타산에서는 손해가 날 것 같은 일들도 그 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지는 경우도 있다. 미국 면적의 1/5에 해당하는 알류트(Aleut)어로 ‘거대한 땅’을 의미하는 인디언 말인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의 국무 장관이었던 윌리엄 수어드(William Henry Seward, 1801~1872)가 러시아 정부로부터 720만 달러에 구입해서, 1959년에 49번째 주로 편입되면서 정식으로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당시 상황으로는 쓸모없는 빙토(氷土)에 예산을 낭비했다면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지금 그 가치는 어떠한가. 비교할 수조차 없다.

11시간 59분, 약 열두 시간에 걸친 이번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역시 예상대로 양국의 비핵화에 대한 약속이 미온적이었다는 야당의 발표가 잇따랐다. 그렇다면 그동안 미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강대국들의 온갖 위협과 제재가 북한의 핵개발을 포기하게 할 수 있었던가. 아니지 않은가. 분단 이후 한반도가 이리도 통일의 열기가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30분 판문점 군사분계선(MDL)에서 역사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양 정상은 계획에 없던 북측 땅을 밟았다. 문 대통령이 “위원장님이 남측으로 오시는데 나는 언제쯤 넘어갈 수 있겠느냐”고 하자, 김 위원장이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라며 그의 손을 이끈 것이다. 남과 북을 순식간에 넘나 든 두 정상의 모습은 누가 뭐라 해도 감동적이었다. 그러면 되는 것이었다. 마음을 열고 이념의 허울을 벗으면 언제든 넘어설 수 있는 선, 우리가 형제였음을 부정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1953년의 반송을, 백두에서 한라까지 길어 나른 물과 흙으로 ‘소떼 길’에 심었다. 일전에 필자가 기고한 고 정주영 회장이 지나간 그 길에서 말이다. 겨우 한 삽 남짓 되는 흙과 한 말도 안 되는 물로 심은 한 그루의 소나무가 주는 상징성은 우리 민족이 아니면 그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이었다. 게다가 도보다리에서 두 정상의 환담은 어떠한가. 1,2차 회담 때와는 달리 당일로 치러지는 회담이다 보니, 바쁜 일정이었음에도 두 정상은 고요하고 차분한 가운데 도보다리 위에서 ‘이해의 시간’을 가지는 여유를 가졌다.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두 사람만이 알고 있다. 보도된 내용과 크게 상이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한 공간에서 마주하고 두 정상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그야말로 소원하게 지내던 형제가 서로의 오해를 풀고 화해하는 장면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닌 것처럼 비쳐졌다면 필자의 과장일까.

양국 정상이 처음으로 악수를 나눴을 때 남측 기자의 카메라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북측 기자의 모습이 잡혔을 때 우리는 뜨거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내친 김에 바로 ‘종전(終戰)선언’까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지만, 로드맵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하니 이를 기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휴전 직후에 반공교육의 일환으로 북한의 호전적인 성향과 함께 북한 주민들까지 싸잡아서 괴물로 취급하거나, ‘빨갱이’라고 해서 거의 별종의 동물취급을 하며 적대시해왔다. 처음부터 양국의 통일교육이 잘못되어 온 것은, 통일이나 소통을 통해서 자신의 위치가 위협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권(利權)이 크게 개입했기 때문이리라. 굳이 통일이 아니어도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의 향유를 즐길 수 있는데, 이산가족의 뼈저린 상잔의 아픔을 이해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지금은 남과 북 할 것 없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대상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한반도에 휘몰아치는 통일의 열풍을 개인이나 집단의 창과 방패로는 잠재울 수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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