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호박
  • 승인 2014.08.2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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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조 시인

베란다에 방치된 채

겨우내 얼었다가 녹았다가

뼛속까지 허공이 된 몸

담장아래 내다 묻었을 뿐인데

미처 읽어내지 못한 세상사처럼

곁가지만 만들며가는 어리석은 내 방식까지 품어

다시 싹 내리고 꽃피워

칠팔월 땡볕에도 탯줄 맨 끝자리에

잔병치레 잦던 나를 앉혀 다스려 낸 당신

호박은 늙으면 속이라도 달지만

다 늙은 어미 속은 소태맛이라, 아무쓸모 없구나.

당신의 애끓는 노동가 뒤에서 나는 날마다 푸르렀습니다

그랬습니다

마땅하듯 차지한 달디 단 이 꽃자리가

당신 애간장 다 녹여낸 깊은 속이란 것,

무서리 맞고 담장에 걸려있는

마른호박 줄기 걷어내면서

텅, 쓰디쓴 당신 속 그 소태맛의 배후에

단맛으로만 길들여진, 여태 생 속인 내가 있는 줄

아직 알지 못합니다

▷▶박경조. 경북 군위 출생.
2001년 계간 사람의 문학 등단.
시집 ‘밥 한 봉지’

<해설> 한평생 편암은 내려놓고 오직 가족 위해 헌신한 어머니 가슴, 어찌 새까맣지 않을까? 뼛속까지 허공이 된 저 호박처럼 다 내어주고 텅텅 비었을 어머니 가슴, 당신이 있어 세상이 환해진다고, 그게 한국의 어머니라고. -제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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