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부모 없이
애어른이었을 테지
저 스스로 굼뜬 부모였을 테지
세월 담겨
큰 아이인 것
속없이 어른아이인 것
낙동강 몇 백리 사는 동안
물고기 뜬 눈으로 밤 보내고
산짐승 터럭으로
갖은 바람 맞았지
그 멍한 순정으로 쓰러지기도 하고
다시 곧추서기도 하고
언제 아팠던가
언제 억울하고 원통했던가
그런 것도 털어버린 뒤
한 세월 아니라
두어 세월 다 불러다 놓을테지
해질녘도
해돋이 무렵 옷 입고 나온
영락없는 옛날 고향 처녀 아니리
▷▶고은. 1933년 전북 군산 출생. 1959년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한 이래 150여권의 시집, 비평집, 소설 등 저서를 냈다. 시집:만인보,새벽길 등 다수, 대담집:바람의 사상 등이 있다.
<해설> 김용락 시인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에 이런 시도 나왔을 것이다. 경북 의성 단촌 출생인 김용락 시인의 구수함 속에는, 문인으로서의 고된 지난날도 있었을 것이다. 물고기 뜬 눈으로 밤 보내고 산짐승 터럭으로 갖은 바람 맞고 난 지금의 시인은 낙동강의 큰 줄기 되어 냇가와 샛강들을 보듬고 있다. 김인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