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막걸리 보안법’과 유언비어(流言蜚語)
‘사이버 막걸리 보안법’과 유언비어(流言蜚語)
  • 승인 2014.10.22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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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창 명예 주필
여민컴 대표
#1. 파리를 방문한 콜 수상이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에펠 탑 앞을 지나갔다. 에펠 탑을 석유시추탑으로 착각한 콜 수상은 미테랑 프랑스대통령에게 물었다. “프랑스는 아직도 석유를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2. 콜 수상의 아들은 다음 번 휴가 때 오스트리아의 볼프 강 호수로 가족 야유회를 간다는 말을 듣고 몹시 기뻤다. “아빠 그곳에서는 최근 수상(水上) 스키도 탈 수 있답니다.” 콜 수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난 그 호수가 경사졌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위의 에피소드는 모두 헬무트 콜 서독 수상을 조롱한 우스개들로 1980년대에 회자된 ‘콜 수상 농담 시리즈’이다. 콜 수상은 16년간 수상(총리)으로 일하면서 독일 통일을 주도한 인물이다.

다시 1980년대 국내에서 유행한 농담 한 토막.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주최한 만찬에 레이건(미국) 고르바초프(러시아) 전두환 대통령이 모두 늦었다. 레이건이 “아임 소리”, 고르바초프가 “미 투”라고 말하자, 전두환도, “미 스리”라고 말했다. 이에 이순자 여사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네?”라고 대답했다.

콜 수상 농담시리즈는 공공연히 입에 담을 수 있었지만 전두환 농담은 은밀히 구전되다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 밖으로 나왔다. ‘막걸리 보안법’ 때문이었다. 막걸리 한잔 걸치고 ‘나라님’ 욕하는 호기를 부리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자, ‘막걸리 보안법’이란 말이 등장했다.

과거 ‘얼음공화국’시절의 세태를 풍자한 이 말이 최근 ‘사이버 막걸리 보안법’으로 부활했다. 검찰이 메신저 프로그램인 카카오톡 상의 명예훼손 발언을 수사하겠다고 밝히면서 부터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우리 검찰이 사이버 명예훼손까지 수사할 만큼 한가한 조직이던가. 당연히 수사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박근혜대통령은 지난달 16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대통령의 이 말 한마디가 검찰을 움직였다. 그렇다 해도 특정 검색어로 실시간 모니터링해 명예훼손으로 처벌하겠다는 것은 검찰이 전가의 보도인 기소권을 ‘조자룡 헌 칼 쓰듯’ 남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검찰 스스로 사법부임을 포기하고 정권의 호위무사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검찰이 ‘닭잡는 칼’을 소 잡는 데 쓰겠다고 하자, 사이버검열 논란을 빗댄 패러디 대자보 광고가 등장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홉시 반이다. 이제 내 카톡 좀 그만 뒤져”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풍자 대자보는 기발하다. 대통령·검찰·경찰을 남자친구에, 압수수색 대상자와 누리꾼을 여자친구에 비유하며 공권력의 카카오톡 압수수색을 비꼰다.

‘아홉시반 주립대학 14학번 박은혜’ 명의로 올린 대자보는 “자기야, 나 허위사실 유포한 적 없다니까./ 맨날 나한테 오빠 믿지? 하더니/ 자기는 왜 나를 못믿어?/ 아니 그리고 사귀는 사이에... 내가 자기한테 섭섭한 거/친구들한테 투덜댈 수도 있는 거 아니야/(중략)아무리 그래도 내 카톡이랑 페북 다 뒤지는 게 말이 돼?/7시간 동안 어딨었냐고 핸드폰 좀 보여달라 했을 땐/사생활 침해라고 난리더니.../오빠 때문에 나 다 탈퇴했어./이제 연락하고 싶으면 전보 쳐” 라고 적었다. 대자보 필자 박은혜는 발음상 박근혜대통령을 연상시키고 박대통령의 7시간 의문의 행적을 지적할 정도로 간단치 않은 내공으로 풍자한다.

국민들은 풍자만 하지 않고 검찰의 ‘사이버 막걸리 보안법’ 집행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대표되는 검찰의 사이버 명예훼손 근절대책이 발표되자, 국민들은 대거 ‘사이버 망명’으로 응수했다. 범죄자 검거를 빌미로 국민을 감시하겠다고 하자, 감시가 없는 곳으로 떠난 것이다. 결국 검찰의 대통령에 대한 과잉 충성이 범죄자도 못 잡고 중국 북한 등 언론 통제국 수준으로 국가 이미지만 실추시킨 셈이다. 경제·산업적으로도 ‘IT강국’이 아니라 ‘IT탄압국’이 되면서 박근혜정부가 외치던 ‘창조 경제’가 ‘망조 경제’로 바뀌며 ‘ICT강국 건설’은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헌법 17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다수 국민들의 주민번호가 털리는 등 개인정보 노출은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 개개인의 은밀한 통신까지 낱낱이 엿보겠다고 하니 국민적 저항이 생기는 것이다. 유언비어(流言蜚語)는 글자 뜻 그대로 ‘흐르고 날아다니는 말’이다. 흐르는 물과 바람을 잡겠다는 검찰의 호기가 그냥 객기로 그치면 좋겠으나 신뢰를 잃어 간첩과 테러범, 유괴범 등 국가 안보 및 중대 범죄자까지 놓칠까 두렵다. 유언과 비어는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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