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후진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젊은 후진들을 두려워해야 한다
  • 승인 2015.01.2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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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전 중리초등
학교장
독서삼여라는 말이 있다. 계절은 겨울, 시간은 밤, 그리고 때는 비오는 날이 좋다고 한다. 시골집 군불 넣은 뜨끈뜨끈한 아랫목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거문고와 술과 시를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라 불리는 백운거사 이규보의 책을 읽었다. 날씨가 추운 관계로 방안에서 뒹굴뒹굴하면서 게으름을 부리며 건성건성 읽었다. 마침 ‘용풍’이라는 자서전적인 글이 나왔다. 용풍은 ‘게으름 병’ 또는 ‘귀찮음 병’으로 해석이 된다.

‘세상은 빨리 변해 가는데 게으름 병은 꼼짝 않고 머물러 있고/이리 보잘 것 없는 몸인데도 게으름 병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네./집하나 있는데 풀이 우거져도 베기 귀찮고/책 일천권이 있는데 좀이 슬도록 펴 보기 귀찮고/머리가 헝클어져도 빗기 귀찮고/몸에 옴이 올라도 치료하기 귀찮고/말하기도 귀찮고/남과 웃고 노는 일도 귀찮고/남들을 따라 다니기도 귀찮고/걷기도 귀찮고/보기도 귀찮단 말이야/세상에 무슨 일이든 귀찮지 않은 게 없는데 이런 병을 무슨 수로 고칠꼬.’

세상에 모든 질병은 예방이 가능하고, 병이 생기면 처방에 의한 치료를 하지만 아직까지도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은 병이 ‘게으름 병’ 또는 ‘귀찮음 병’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병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고,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병임엔 틀림없다. 아는 병이니 크게 걱정하고 근심할 병은 아닌 것 같지만 마음 단단히 먹어야 개선될 병이리라.

또 이규보의 다른 시 ‘용담사를 지나며’에는 ‘물 기운이 서늘하여 짧은 적삼에 베어들고/한줄기 맑은 강물 쪽빛보다 더 푸르네.’의 쪽빛(藍)이 나온다.

‘청출어람(靑出於藍)에 청어남(靑於藍)’이란 말이 있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말로 많이 쓰인다.

십팔 년 전 졸업시킨 제자가 주례를 부탁한다. 초등학교 시절 6학년 같은 반에서 재잘거리고 뒹굴며 지낸 제자들이다. 남자 아이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촉망받는 회사에서 개발사업부 대리로 있고, 여자 아이는 대구의 모 이공대학교 조교수이다. 이만하면 모두가 뜻한 바를 이룬 제자들이다.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아마 ‘게으름 병’이나 ‘귀찮음 병’이 두 제자들에게도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두 제자들은 ‘나에게 최대의 적은 게으름이다.’라는 담임의 평소 강조하는 말을 되새겨가며 노력했단다.

그리고 졸업식 때 마지막으로 담임교사가 들려 준, 눈 빛에 글을 읽은 손강과 반딧불 빛으로 글을 읽은 차윤의 성공이야기인 ‘형설지공’의 의미를 곱씹으며 나태해지는 마음을 추스르곤 하였단다.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되어 주례를 부탁하니 마음이 흐뭇하고 뿌듯하여 어깨에 저절로 힘이 솟는다.

순자는 ‘학문을 그쳐서는 안 된다.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 더 차다. 푸른색은 쪽빛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고 하면서 학문하기를 권장하였다.

공자도 ‘후생가외(後生可畏)’라 하였다. ‘젊은 후진들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후생은 나이가 젊고 의기가 강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진보는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름을 말한다. 후생은 연소자, 후배, 후진, 젊은이를 말한다.

또 ‘후생들의 장래학문이 오늘의 우리보다 못할 줄 어찌 알리오. 후생들이 나이 사오십이 되어도 이름이 들리지 않으면, 두려워 할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다.

후생가외는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 안회의 훌륭함을 두고 이른 말이라고 한다. 공자는 안회가 학문을 사랑하여 함부로 ‘노여움을 옮기지 아니하며(不遷怒), 허물을 깨달음에 이를 되풀이하지 아니하였다.(不二過)’고 한다. 안회처럼 학문을 사랑하는 자 있음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최고 애제자인 안회의 애정과 칭찬은 논어에 자주 나타난다.

우리 속담에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이 있다. 이것을 후생각고(後生角高)라 한다. 청출어람, 후생가외, 후생각고는 같은 의미이다. 인간은 에누리 없는 삶의 진보과정에서 발전하고 성숙하고 있다. 그 과정에 ‘게으름 병’ 또는 ‘귀찮음 병’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젊은이는 학문에 정진해야 하고 선배는 학문을 함에 겸손해야 함을 일깨우는 마음의 자세가 항상 필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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