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리를 사랑한 소녀, 국악 샛별로 뜨다
피리를 사랑한 소녀, 국악 샛별로 뜨다
  • 남승렬
  • 승인 2015.11.2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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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협주곡의 밤’서 피리산조 선보인 구현지양

초등학생 때 피리 매력 빠져…국악동아리 거치며 실력 쑥쑥

슬럼프에 인문계 고교 진학했지만 결국 돌아온 ‘피리 외길’

경연·콩쿨 휩쓸며 협연까지…“긴 호흡의 국악인 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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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현지(18)양은 대구시립예술단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오디션에서도 합격하는 등 장래가 촉망되는 예비 국악인이다. 23일 대구 북구 관음동 관음초등학교 교정에서 구양이 피리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이범희기자 bumhee@hanmail.net

소녀는 ‘피리’를 사랑했다. 소녀가 사랑한 피리. 대나무를 얇게 깍아 만든 ‘서’라고 하는 리드(double reed)를 꽂아 부는 목관악기의 하나. 애절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그 음색은 한국인의 정서와 무척 닮았다.

소녀는 지금보다 더 어리고 작았던 시절,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만큼이나 작고 가녀린 이 국악기가 마냥 좋았다. 소녀는 작지만 매우 큰 음량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피리가 좋아 장래도 피리와 함께 하기로 했다.

소녀는 자신의 분신(分身)과도 같은 피리를 들고 지난 20일 한 무대에서 선다. 대구시립국악단이 주관한 ‘제21회 청소년 협주곡의 밤’ 공연장이다. 이날 공연은 향후 한국 국악계를 이끌 젊은 연주자들이 자신의 연주 실력을 선보인 무대. 공연이 열린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은 이 작은 소녀가 들려준 피리산조협주곡 ‘바라지’의 감흥과 박수 갈채로 넘쳐났다.

소녀가 연주한 바라지는 ‘박범훈류 피리산조’에 바탕을 둔 피리협주곡으로, 산조에서 쓰이는 다양한 주법들을 집약해서 만든 곡. 굿에서 여러 악사와 조무들이 무녀의 굿을 바라지하듯 소녀는 관현악의 조화로운 바라지를 받으며 피리산조 본연의 멋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피리를 사랑하는 소녀, 국악계를 짊어갈 ‘국악 샛별’ 구현지(18·학남고등학교 3년)양 이야기다.

◇피리…인연이 되다

“피리의 매력이요? 보시다시피 되게 작은 악기인데 소리는 매우 크고 웅장함이 있어요. 관현악의 주선율이 되는 악기인데 (처음 접했을 당시 어려서) 흥미를 가지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피리 부는 것을 무척 좋아했대요.”

현지양은 초등학교 때 처음 피리를 접했다. 대구 북구 관음초등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엄마가 교사로 있는 동평초등학교의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인 국악공연을 보러 갔다가 피리의 매력에 빠졌다. 엄마는 현지양이 피리와 국악에 흥미를 가진 것을 알고 국악으로 특화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이 있는 동평초교로의 전학을 권했다. 이를 계기로 현지양은 동평초교에서 피리를 배우게 됐다.

이후 중학교에 입학한 그는 대구 북구 칠곡지역 청소년 국악동아리 ‘해마루’에 가입,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피리와의 인연을 이어나간다. 하지만 현지양은 당초 예술고 진학을 꿈꿨지만 중3 시절 슬럼프에 빠져 일반고에 진학한다.

“고등학교 진학을 준비할 당시는 구체적 이유도 없이 피리가 그냥 싫어진 시절이었어요.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웃음) 피리를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그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더라고요.”

인문계 고교에 진학한 현지양은 피리를 완전히 놓을 수는 없어 대구예술영재교육원 국악단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학업과 예능을 함께 하기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가 따랐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 1학년 여름 즈음부터 예술대 진학을 목표로 다시금 피리를 손에 ‘꽉’ 움켜쥐게 된다.

◇“긴 호흡으로 국악 한길 걷고 싶어”

그 땀과 타고난 재능은 빛을 발했다. 전국달구벌국악경연대회 관악부 대상과 영남대콩쿨 관악부문 대상 수상 등 각종 대회에서 기량을 뽐내기 시작한 것. 올해 5월에는 대구시립예술단이 실시한 ‘청소년 협주곡의 밤’ 협연자를 뽑는 오디션에 최종 합격, 지난 2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무대에 올라 피리협주곡 연주에 나서기도 했다. 현지양은 이 무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관현악협연 공연은 거의 처음이었고 단독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됐어요. 공연이 끝난 뒤 ‘잘했다’, ‘수고했다’라는 말을 들으니 그제야 긴장이 풀리더라고요.”

현지양은 현재 중앙대학교 전통예술학부, 경북대학교 국악과, 영남대학교 음대 국악전공 등 3개 대학의 국악관련 학과에 이미 합격했다. 부산대학교 국악관련 학과는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어떤 대학을 선택할 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어디를 선택하든지간에 ‘국악’ 그 한길을 걸으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이게(대학진학) 끝은 아니잖아요. 새로운 시작이니깐, 또다시 한 걸음 한 걸음 긴 호흡으로 피리를 불며 국악을 하고 싶어요. 후학을 키우는 선생님이 되든 지, 연주자가 되든 지 결국 국악을 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지나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이 더 기대되는 이 소녀 인터뷰이, 음량이 커 국악기 가운데 주선율의 연주를 담당하는 피리 같은 존재로 한국의 국악계를 주름잡을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남승렬기자 pdnamsy@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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