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 도시를 적시며
정류장 입간판을 적시며 비가 내리고 있다
비는 내려
창밖은 묘지처럼 쓸쓸하고
내 귀는 한없이 고요해서
나는 길을 따라 나선다
아무른 약속도 없이
어떤 의심도 없이
멀리 길을 따라 나선다
이제 후회도 없이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에 갇힌다
도시는 오래도록 빗소리에 잠기고
나는 젖은 신발을 끌고 멀리 갔다 돌아오지 못한다
▷▶이순화 2013년 ‘애지’ 등단. ‘난설문학회’ 회장.
<해설> 우리는 때로 이상향의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 일상 탈출의 강력한 욕구를 부추기는 답답한 삶의 굴레, 몸은 현실에 얽매인 채로지만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고 떠나고 싶은 것이다. 듣기 싫은 세상의 소리들이라서 현재를 떠나선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해도 그렇게 떠나보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영원한 자유일지 모르는 그 길을 따라서 말이다. -정광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