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안계면 위양2리
한때 주민 100여명 넘었지만
현재 노인만 60여명 거주
“대출금 이자도 못 갚는데
누가 와서 농사 짓겠나”
수확철 맞은 황금 들판에
분주함 대신 적막감만
6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의성군 안계면 위양2리도 추수를 기다리는 벼들이 빼곡한 반면 인적은 드물었다. 위양2리 김여대(70) 이장은 “마을에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없으니 조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여대 이장은 마을에서 농사 짓는 6~7가구 주민 중 한 명이다. 김 이장은 나이가 칠순이지만, 마을 농사꾼 중 가장 어려 마을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옛날엔 위양2리에 100명도 더 살았지요. 지금은 다 떠나가고 노인들만 살고 있어요.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절반을 넘지요. 젊은 사람은 없어요. 농사짓는 사람 중엔 제가 가장 나이가 적고, 주민 통틀어서도 60살 먹은 사람이 가장 어려요.”
김 이장은 지난 1972년 군에서 제대를 하자마자 농사일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통일벼’가 해마다 20~30%씩 가격이 올라 벼농사로 버는 돈이 쏠쏠했다. “그땐 밑천 없는 사람들이 공무원·회사원 하고 부모한테 물려받은 논이 조금만 있어도 전부 농사지으려고 했다”고 김 이장은 전했다.
그렇게 높았던 쌀값이 10년쯤 전부터는 차츰 떨어지더니, 지금은 ‘농사 지으면 등신 소리 듣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 이장은 “콤바인 6천만원, 트랙터 5천만원, 이앙기 3천만원, 거기다 경운기, 지게차, 육묘장 등 기계값만 다 합쳐도 2억원 정도 든다”면서 “지금 쌀농사 지어서는 대출 이자도 못 갚는데 이제 와서 농기계 사들이는 사람은 등신 소리 듣는다”고 말했다.
또 “농기계 값은 오르는데 쌀값은 점점 떨어지지, 농번기 일당 주고 사람을 써도 하루에 7~8만원씩 드니 결국 사람들이 다 떠나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부인 한분조(여·67)씨도 “대구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이 나중에 농사 지으러 고향 오겠다고 하면 무조건 말린다. 농사일 물려줄 생각은 절대 없다”고 거들었다.
안계평야에서 추수한 나락들이 모이는 안계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도 농민들의 한숨이 느껴졌다. RPC는 벼를 저장·가공·보관하는 곳이다.
올해 40㎏들이 조곡 수매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잠정 가격 3만5천원으로 수매 중이다. 12월 말 수매가격이 확정되면 보통 잠정 가격보다 2천~3천원이 오른다. 지난해 안계농협RPC 수매 확정가격이 4만6천500원이었던 점으로 미뤄 올해 확정가격이 다소 오르더라도 작년보다 최소 7천원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송덕수 안계농협미곡종합처리장장은 “조곡 수매가격이 워낙 떨어져 지금 농민들은 ‘정부에서 어떻게 해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연말에 수매가격이 확정되고 실제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들면 농민들의 불만이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정쌀 80㎏ 가격 역시 대폭 떨어졌다. 안계농협에 따르면, 올해 쌀 판매 가격이 대구로 가는 것은 14만원대, 서울로 가는 것은 12만원대다.
윤태성 안계농협 조합장은 “벼 농사가 5~6년 연속 풍작이라 생산량이 많고 갈수록 쌀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여서 쌀 판매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협 측에서도 손해 보면서 판매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쌀 수매가가 대폭 떨어지며 성난 농민들이 RPC 주변에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현재 쌀값 12만원! 입이 있으면 말 해봐라!’, ‘쌀값 인상 17만원을 21만원으로’ 등 현수막 문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이 게재됐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당시 쌀값을 21만원까지 인상한다고 공약했다.
쌀이 주요 생산품목인 안계면은 농산물 값 폭락과 인구 감소를 지역의 생존을 위협하는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남국 안계면장은 “수입 개방으로 농·축·수산업계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 수출하려면 중국산 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안계면은 단순 농업을 넘어 친환경 반려견 농장, 말 육성 산업 등 지역 성장동력이 될 수 있는 사업을 다양하게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병태·김정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