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 이정 개인전, 7T갤러리 내달 2일까지
서예가 이정 개인전, 7T갤러리 내달 2일까지
  • 황인옥
  • 승인 2017.11.23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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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파괴한 서예, 현대미술로의 가능성을 열다
전통서예와 현대의 접점 모색
글자 해체로 시각적 면모 부각
한자 낯선 세대에 접근성 높여
자세히 보면 해석 가능한 기호
서예 본질인 ‘의미 전달’ 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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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해체와 재배치로 서예의 현대미술로서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서예가 이정의 전시가 7T 갤러리에서 12월 2일까지 열리고 있다.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서예는 선비들의 예술적 유희 대상이었다. 고매한 서예가는 그 어떤 분야보다 숭배됐다. 하지만 21세기의 젊은 서예가 이정에게 서예는 좀 복잡하다. ‘운명’이면서 ‘굴레’다. 서예가 이정은 “서예는 운명처럼 행복하면서도 고뇌를 부르는 이율배반적인 대상”이라고 했다.

“많은 전통예술 분야가 조금씩 현대와의 접점을 찾고 있다. 하지만 서예는 지금까지 철옹성처럼 전통을 고수했다. 그 결과 현대인과 멀어졌다. 소통하지 못하는 예술은 암흑이다. 젊은 서예가에게 이 현실은 준엄하다.”

이정은 40대 초반이다. 서예를 했던 외할머니의 영향으로 유년시기부터 한지와 먹은 익숙한 놀잇감이었다. 그렇게 보면 붓을 잡은지 어언 30여년째가 된다. 2015년에 ‘석재청년작가상’을 수상하며 실력도 인정받았다. 중견서예가로 불려도 어긋나지 않을 만큼 서예에 대한 뿌리가 깊다.

전통서예에서 서예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민으로 옮겨간 것은 30대 중반 무렵부터다. 서예가 쇠락하고 현대인과의 소통 동력을 상실해 가는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고뇌 끝에 전통서예와 현대인과의 접점 찾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서예의 현대미술로써의 가능성을 과제로 삼았고, 전통서예에서 현대서예로 장르 확장을 모색했다.

“현대적 서예를 위해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예의 관념성을 약화시키고, 시각적인 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작업적인 측면에서는 현대적인 매체를 다양하게 활용하게 됐다.”

현대인과의 거리 좁히기를 위해 화선지 대신 건축 재료인 회벽이나 캔버스를 사용하기도 하고, ‘밭 전(田)’자를 모티브로 밭에 씨앗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영상작업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모색했다. 전통서예 쪽에서 보면 파격이었다.

최근 개인전을 시작한 7T갤러리에 걸린 작품들은 익숙한 듯, 낯설다. 한자를 최대한 해체한 후 심미적으로 재배치했다. 한자의 올드(old)함을 벗고 세련미를 입혔다. 먹의 농도 조절로 시각적 예술성은 한껏 뽐냈다. 예술발전소에서 열리고 있는 ‘제작의 미래’전에 출품한 조각 작품들도 맥락은 같다. ‘읽기’와 ‘보기’라는 서예의 양면성에 ‘읽기’를 빼고, ‘보기’를 위한 선적 요소를 강조했다.

“서예는 한자와 한글을 대상으로 하고, 뜻을 전달하는 예술이다. 읽기와 보기가 동시에 일어난다. 나는 이 프레임을 단순화했다. 특히 한자를 모르는 세대도 서예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시각적인 면에 더 집중했다. 문자를 읽히지 않을 만큼 해체해 버렸다.”

최근 다시 한지와 먹으로 돌아왔다. 몇 년 동안 다양한 매체에 도전했지만, 어느순간부터 그것이 강박으로 돌아왔다. 단시간에 변화를 이루려고 하면서 과부하가 걸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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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작 ‘득의’. 7T 갤러리 제공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면서 탈탈 털린 느낌이다. 현대인과의 소통력을 높이는 것도 좋지만, 물성보다 본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화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니 편안해졌다. 이번 전시는 물성보다 본질적인 측면에서 서예의 현대적 재해석을 시도했다.”

해체를 통한 ‘읽기’를 부정하고, 기호같은 단순화된 형상으로 예술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극하게 보면 읽히고, 의미도 보인다. 의미 전달이라는 서예의 본질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뜻이 좋은 한자를 선택하고, 글씨는 쓰면서 지극한 기원을 담는 것은 또 하나의 원칙이다. 의미 전달이라는 서예의 본질 때문이다.

“희망적인 뜻의 글자를 선택한다. 나쁜 뜻의 한자는 아무리 조형적으로 좋아도 배제한다. 먹도 하루 정도 가라앉힌 후의 맑은 것만 사용한다. 현대미술의 추상성을 염두에 두고 해체하고 재배치하지만 동양의 정신은 지켜내고 싶었다.”

동양의 사상과 철학을 심미적으로 접근하는 서예는 예술을 넘어 정신수양의 경지까지 추구한다. 오직 서예(書藝)에만 ‘예(藝)’자를 허락한 이유도 이 점 때문일 것이다. 이정은 현대적인 서예를 추구하지만 이 정신만은 놓지 않고 가려한다.

“서예는 작품도 좋아야 하지만, 그것을 쓴 서예가의 인격적 완성도도 높아야 제대로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것은 유난히 서예가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나 역시 앞으로 어떤 변화로 서예의 소통력을 높일지 예상할 수 없지만, 인격수양이라는 덕목은 언제까지나 가지고 갈 것이다.” 전시는 12월 2일까지. 070-8259-5456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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