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100살
흥사단 100살
  • 승인 2013.05.1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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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열 객원 大記者
100이라는 숫자는 크고 많다는 뜻을 가진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한 문제도 틀리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사람이 100살을 살면 하늘이 내려준 수명이라고 해서 천수(天壽)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념과 철학을 실천하고자 만든 사회단체가 100년을 꾸준히 지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근대에 들어서면서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을 치르며, 혁명을 겪고, 쿠데타까지 자행된 역사의 수렁 속에서 이러한 이념단체가 살아남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유독 ‘흥사단’이라는 단체가 오는 5월13일로 창단 100주년을 맞이한다. 흥사단은 선각자 안창호에 의해서 미국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안창호는 1878년 평안도 대동강 하류에 있는 도룡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6세 때 청일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전쟁터는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조선 땅이다. 조선을 삼키려는 양대 강국이 허약한 조선조정의 친청파와 친일파의 갈등을 부추기며 일대접전을 벌이게 된 것이다. 신흥 일본의 승리로 끝난 이 전쟁의 여파로 일본은 북간도 등에서 대륙진출의 교두보를 확보하며 동학혁명을 무산시킬 수 있는 기회까지 얻는다.

안창호는 이를 나라가 힘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임을 직시하고 배우고 깨닫는 운동을 전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가 후일 흥사단을 조직하여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 4대 정신을 일상생활의 정신자세로 지정한 것은 이러한 깨달음에서 얻은 교훈이다.

안창호는 자신이 제창한 이 정신을 몸소 실천하면서 흐트러짐이 없는 삶을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사람이다. 흥사단은 비록 조국에서 멀리 떨어진 미국에서 발족했지만 국내에서도 각도대표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운동과 민족화합에 뜻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인 단체로 승화했다.

때마침 윤봉길의사에 의한 홍구공원 폭탄투척사건이 일어나자 중국에서는 일억 중국인이 하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의 한인이 했다는 자각운동까지 벌어지며 그동안 백안시해오던 한국 독립운동가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다. 그러나 일본경찰은 천장절에서 죽고 다친 요인들의 보복으로 상해임시정부 지도부 체포에 나선다. 김구 등은 기미를 알아채고 일찍이 항주로 몸을 피했으나 안창호는 체포되어 국내로 이송된다.

일제의 눈엣가시였던 안창호의 체포로 기세를 올린 일본경찰은 호된 고문으로 보복의 칼을 휘두른다. 안창호는 일방적인 재판 끝에 징역4년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된다. 광복을 이룬 대한민국에서도 군부독재가 기승을 부릴 때 민주화운동 하다가 구속된 많은 사람들이 교도소에 들어갔다. 필자가 ‘80년 신군부에 의해서 소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군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서대문에서 대전으로 이감되었다. 내가 처음 수용된 독방이 나중에 교도관으로부터 들어 알았지만 안창호선생이 수용되었던 감방이라는 말을 듣고 온 몸이 전율하는 감동을 느꼈다.

나는 흥사단에 가입한 일이 없지만 흥사단 본부가 명동 대성빌딩일 때 장준하를 비롯한 민주인사들과 수많은 집회를 가졌으며 뒤늦은 결혼도 동숭동으로 옮긴 흥사단 강당에서 했으니 눈곱만큼 인연이 없다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지 흥사단 강좌에도 간혹 참여하게 되고 서영훈 강태욱 박인주 반재철 등 흥사단의 산 증인들과도 작은 교유를 갖는다. 이 분들을 만나면서 느끼는 점은 흥사단을 거친 이들은 뭔가 다르다는 점이다. 흔히 사회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은 시정의 잡사(雜事)에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흥사단 사람들은 민족의 힘, 정신자세, 도덕과 인격 등을 논하는 수가 많다.

도산 안창호는 어떤 선각자보다 많은 교훈을 남겼다. 그의 어록에 따르면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 있다. 인물이 된다는 것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말이 아니다. 남의 모범이 될만한 인격을 갖추고 책임감과 신뢰감 그리고 애국심을 가져야 진정한 인물이 됨을 갈파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하고 있다. 흥사단 1천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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