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집 두레박줄이 짧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 집 두레박줄이 짧음을 알아야 한다
  • 승인 2013.06.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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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 중리초등학교장
문경에 있는 대야산을 가기 위하여 둥우리고개를 넘었다. 둥우리고개 정상엔 문도유경(聞道有慶)이라는 커다란 돌 비석이 길을 가는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문도(聞道)는 도를 듣는다는 뜻이니, ‘도리를 안다’는 것이고, 유경(有慶)은 경사가 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는 것이다. 도리를 알고 살아가니 복이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용에 보면 ‘하늘이 명부한 것이 성이요.(天命之謂性). 성에 따르는 것이 도요.(率性之謂道). 수도를 하는 것이 교다.(修道之謂敎)’고 하였다. 태어날 때의 성품은 천성이고, 천성에 따르는 것이 도고,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가르침도 없이 도(道)를 알고,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는가?

그리고 둥우리고개 돌비석엔 시가 새겨져 있는데 특히 기억할만한 내용은 ‘구비구비 맺힌 전설 돌결 위에 푸르러/오가는 길손의 행복 구름같이 일어라.’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좋은 의미의 내용이고 가슴 깊이 음미 해 볼만하다.

대야산 초입엔 용추 폭포가 있는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보였다. 안내판에는 하트모양이라고 되어 있는데, 옛날에 용 자웅이 태어나 하늘로 승천한 곳이라고 한다. 움푹 패어진 바위 옆에는 용의 비늘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고 생각을 가다듬어 보니 생명이 잉태한 자궁 모양과 흡사하다.

맑고 깨끗함 때문에 물속이 투명하다. 바닥이 보일 듯 말 듯한데, 젊은 등산객이 하산하다가 소(沼)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 사람은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마 물 깊이가 얕은 줄 알았던 모양이다. 다시 물 밖으로 튀어나온 그 사람은 기다란 막대기를 가지고 다시 물속으로 뛰어 들어 갔다. 얼핏 보기에도 깊이가 3~4m는 됨직하였다. 물속에 뛰어 들었다가 고생한 그 사람은 “보기보다 물이 깊네! 휴유!”하였다.

옛 사람들은 ‘마음의 맑음은 흰 물을 스승으로 삼고(心淸師白水), 말의 신중함은 푸른 산에서 배운다(言重學靑山)’하였다. 자연을 찾는 사람은 새겨볼 말이다.

명심보감의 성심편(省心篇)에 보면 ‘불한자가급승단(不恨自家汲繩短)하고 지한타가고정심(只恨他家苦井深)이로다’하는 말이 나온다.

풀이를 해 보면 ‘자기 집 두레박줄이 짧은 것을 한탄하지 않고, 다만 남의 집 우물이 깊은 것만 한탄한다.’는 말이다.

명심보감은 마음을 밝게 하는 보배로운 거울이다. 이 책은 고려 말 노당 추적(秋適)이 그 시대 어린이들의 학습을 위하여 중국의 여러 고전과 선현들의 좋은 말씀과 언행들에 관한 것을 편저 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시대엔 가정과 서당에서 학동들이 ‘동몽선습’과 함께 기본 교재로 널리 사용하였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즐겨 읽혀지면서 우리 민족의 가슴엔 면면히 흘러, 모두에게 정신적 가치관 형성을 하였다.

경로재(景露齋)는 노당 추적(秋適)을 추모하기 위하여 새운 재각이다. 이 재각은 현재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다. 그리고 배향하는 사당은 화원에 있는 인흥서원(仁興書院)이다. 이곳엔 명심보감판본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 고장의 유명 인물들을 떠올려보면 배울점이 많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은 어휘력이 많이 떨어지고, 독해 능력이 없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옛날 서당에서 훈장들은 ‘독서천편(讀書千遍)이면 기의자현(其義自見)’이라 하였다. 책을 천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나타난다는 말이다. 자꾸 읽어서 머리에 기억되고, 마음에 젖으면, 저절로 그 뜻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나의 두레박줄이 짧음’이라 생각하자. 그러면 훨씬 마음이 편하고 행복이 구름같이 일어나리라.

공자가 제자 유에게 말한다. ‘아는 것을 안다(知之爲知之)하고, 모르면 모르노라 함(不知爲不知)이 곧 앎이다.(是知也)’하였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는 것도 많고, 재주도 많으며, 활동량도 굉장하다. 본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실수도 많음을 알아야 한다. 부자견안(不自見眼)이라는 말이 있다. 자기 스스로는 자기의 눈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눈은 ‘타산지석(他山之石)’과 ‘반면교사(反面敎師)’가 제격이다. 타인의 모습에서 자기를 헤아려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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