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에게 묻다
민들레에게 묻다
  • 승인 2013.06.17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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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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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시간이었다. 신천변에 주차하고 막 지나려는 데 전면 벽돌 사이에 노란 물체가 바람결에 간드랑대고 있었다. 민들레였다. 수직의 벽에서 뭇 생명이 가느다란 허리 하나만을 지탱한 채 지난겨울, 아마도 더 오래전부터 생존해 왔던가 보다. 메마른 틈새, 척박한 환경에서 놀랍게도 한 생명이 꿈틀대고 있었다.

더러 이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곳은 한 치의 여유도 없는 콘크리트 벽면이었기 때문이다. 그 비좁은 데를 파고들어 정착하는 끈질김과 투지 또 저력이라니.

푸른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아픔을 평생 느꼈을 것 같아 참 가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곤두박질치는 벽에서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커가는 민들레, 제집 인양 조신하게 형체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게 대견하다. 설령 앞길이 불안정하고 의심스러움에 직면해 있을지언정 저 유월의 아침햇살을 방긋 맞이하는 여유로움을 보라. 문득 부끄러워진다.

사람들은 웬만한 것을 보고 놀라거나 쉽게 감동하지 않는다. 기상천외한 것을 봐도 어딘가 꾸민듯한지 고개만 갸우뚱, 그저 무관심에 가깝다. 반면에 세상살이는 어떤 자그마한 틈도 가만 놓아두질 않는다. 침투와 공략에 온 힘을 가한다. 다 인간이 만든 덫이다. 저마다 그 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기 싸움을 하고 있다. 나에게로 점점 옥죄어 오는 것들로 심신은 늘 피로하다. 이대로 늙어 쓰러지면 그만이겠지만, 한 번도 그 완성품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오늘도 최상을 향해 치닫고 있다. 어떻게 만날 뜬 눈으로만 살아 갈 수 있겠는가. 간혹 한쪽 눈을 감거나 공허한 마음으로 호수나 숲길에 펑퍼지고 앉아 쉬고 싶다. 나는 가만있는데 주위에서 자꾸 부추긴다면 핑계일까? 내 뜻대로 되는 일이라곤 그렇게 많지 않다. 저 민들레도 불식간 자리를 잡았을 뿐이다. 잠시도 방심하면 잡아먹히고 마는 세상, 방심을 공략한 민들레꽃이 전혀 밉지 않다. 살아가는 방법인 동시에 저만의 처세술인 셈이다. 그 질긴 생명력에 비장감마저 든다.

빠르고 중량감 있는 것, 색과 향도 진한 것이 통하는 세상이다. 가벼움은 살아남지를 못한다. 이 땅에 흔한 것 보통의 것은 오래가지 못하고 주목받지도 못한다. 무엇이든지 최고가 되어야 하고 높아야 하고 고급이라야 통하는 세상에서 종내는 기력을 잃고 만다. 긴장을 촉발하면 발전의 여지도 있지만, 아무래도 위험한 일이 더 많을 것 같아 부담스럽기만 하다.

딱 한 줄기 솟아오른 저 꽃, 머잖아 훌훌 날려버릴 가엾은 몸 동아리지만 수년 이 지나도 튼실하게 살아있을 것만 같다. 질기 디 질긴 민초의 본성 아니던가. 오히려 그 비좁은 틈새는 누가 방해를 놓을 수도 없어 명당중의 명당인지도 모르겠다. 훼방꾼의 시선에서도 멀찌감치 벗어나 있다.

가만히 다가가서 셔터를 눌러본다. 위에서 짓누를 듯 아카시아 나무가 눈을 부라리고 있다. 비록 잔가지가 땅속으로 기어들지를 못해 녹슨 쇠붙이처럼 말라 비틀어 져도 푸른 잎은 건강미를 과시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끄떡없다는 듯, 또 더 많은 가족을 거느리고 싶은 각오에 차있다.

민들레! 굳건한 자태가 오늘 아침에 요동치게 하는구나. 죽음을 무릅쓰고 모진 겨울을 이겨낸 장한 꽃이 아니던가. 누가 뭐래도 제 자란 터가 못마땅해서 한 번 찡그린 적 없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이 땅에 기쁨을 주지 않았나. 묻는다! 때 이른 이 더위는 어디로 날려 보내고 그리 상쾌한 얼굴을 보일 수 있는지. 날렵한 몸매에 살랑대는 춤사위가 저렇게 흥겨울 수가 있을까. 걱정스럽구나. 거꾸로 매달린 삶, 혹여 건너 아파트 단지를 보며 어지러워하고 있지나 않는지. 신천의 물을 보며 하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지 알 수 없다.

나도 틈을 보이고 싶다. 때로는 빙 돌아서도 가고 쉬어서도 가는…….

모든 게 보는 것에 따라 다른 개념인 것, 분명 내가 볼 때는 비좁고 위험해 보여도 상대는 그게 안락일 수도 있다. 망상으로 괴로워하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걸 잘 극복하면 저 꽃처럼 향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이제부터라도 환하고 대차게 살아갈 힘을 키워보련다. 새삼 바르게 서서 걷고 말하고 살아가는 게 귀하고 고마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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