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부자유친을 다시 새겨 본다
<기고> 부자유친을 다시 새겨 본다
  • 승인 2009.05.1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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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큰 아들놈 집에 다녀왔다. 아직 젊은 탓에 살림살이는 풍족하지 못해도 어린 손자들 데리고 오손 도손 사는 모습이 무척 대견스럽다.

내가 젊고 아들이 어렸을 때는 바깥 일 때문에 별로 신경도 써 주지 못한 탓도 있고, 나와 엄마가 열심히 티격태격하는 틈바구니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평소 아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갑지 않은 것 같아 내심 섭섭한 감이 없지 않았다.

아들은 집에서 소형 브라운관으로 된 피시모니터를 사용하고 있었다. 좁은 책상위에 자리도 많이 차지하고 화면도 선명하지 못해서 작업하는데 불편해 보였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요즘 새로 나온 대형 엘시디 피시모니터가 가격도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아서 하나 사주기로 작정하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이제 정년퇴직 하시고 수입도 없는데 안 사주셔도 됩니다” 라면서 극구 사양한다. “아니다, 내가 하나 사주고 싶어 그런다. 어른 장난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라.” 생각해 보니 아들이 어릴 때 내 손으로 집에 장난감 하나 사들고 온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나는 아들에게 피시모니터가 아니고 장난감을 하나 사주고 싶었나 보다.

내가 평소에 자식을 상대하는 방법이 서툰 것은, 아들은 자라면서 은연중에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데, 내 경우 어릴 적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버지는 헌신적인 사랑으로 가족들을 돌보는 가운데 자식들에게 심리적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란다. 자라면서 심리적 안정감이 있어야 성인이 되어 대인관계나 사회적응에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를 비롯해서 편모슬하에 자란 사람들을 보면 어딘가 활기가 부족하고 대인 관계가 서툰 듯 한 면을 보게 된다. 얼마 전 친구 부친께서 돌아가셨다. 아드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천수를 다 누리셨지만 친구는 아버님을 여윈 슬픔으로 몸도 잘 가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마 울타리가 무너져 버린 듯 한 허전한 마음이었으리라. 그래도 친구가 부러운 것은 환갑이 다된 늙은 아들의 재롱과 응석을 받아 주시던 아버님이 계시지 않았던가. 부자유친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이진곤 (경북 경산시 정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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