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나무, 날개 모양의 열매
미선나무, 날개 모양의 열매
  • 승인 2013.08.1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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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규 대구중리초등학교장
얼마 전 충북 괴산군 칠성면 율지리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21호로 지정 된 미선나무 군락지를 찾아 갔다. ‘미선(尾扇)’의 의미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둥글게 펴고 실로 단단히 묶은 후 종이를 발라서 만든 둥근 모양의 부채를 말한다. 주로 대궐 안 잔치 때, 벌이던 춤과 노래에 쓰던 자루가 긴 부채모양의 의장(儀仗)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임금님의 옆에서 두 명의 궁녀가 들고 서 있는 부채가 바로 미선이다.

열매 모양이 미선(尾扇)과 같이 생겼다고 해서 ‘미선나무’라고 한단다. 오직 우리나라의 일부 지방에서만 자생하는 까닭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특징으로는 가지는 자줏빛이 돌고 끝이 개나리 줄기처럼 처진다. 어린가지를 손으로 만졌을 때 네모진 모양이면 틀림없이 미선나무란다. 미선나무의 종류는 꽃의 색깔에 따라서 구분한다.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종이다. 분홍미선, 상아미선, 푸른미선, 둥근미선 등이 있다. 모두 줄기의 색깔이 대부분 꽃의 색깔이란다. 열매는 껍질이 얇은 막 모양으로 돌출하여, 날개를 이루어 바람을 타고 멀리 흩어지는 시과(翅果)이다.

이 날개 열매를 한참 관찰하다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이문열의 소설을 잠깐 생각해 보았다. 주인공의 총에 의해 쓰러진 여주인공은 “이렇게 추락하는 게 안쓰러워…” 라는 말을 남긴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유희는 끝났다’하는 시구에 ‘지금은 대추야자 씨가 싹트는 아름다운 시절!/추락하는 이들마다 날개가 달렸네요’하였다. 이 시에서의 추락하는 이들마다 날개는 모두 아름다움이다.

가끔씩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한다.

지난 8일과 9일은 구미 금오산관광호텔에서 ‘초등교실 변화 인식 제고를 위한 학교장 특별 직무연수’가 있었다. 대구시교육청 우동기 교육감이 ‘행복의 5대 요소’를 특강하였다. 긍정적 정서, 몰입, 돈독한 인간관계, 존재의미와 자존감, 자아실현을 위한 꿈과 끼를 설명하였다. 영어의 Flourish는 긍정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즐거움의 동작이고, 멋진 마무리의 인상적인 활동을 의미함도 알았다.

이튿날, 새벽 일찍 금오산 중턱의 대혜폭포를 향해 줄기차게 걸었다. 문득 김동인의 단편 광화사(狂畵師)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다. 바람이 있고, 암굴이 있고, 산초 산화가 있고, 생물이 있고, 절벽이 있고, 난송(亂松)이 있고-말하자면 심산이 가져야 할 유수미(幽遂味)를 다 구비하였다.

금오산 관리사무소에서 200m를 오르니, 오른편 커다란 바위에 ‘金烏洞壑(금오동학)’이라는 글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글씨의 크기는 길이가 1m, 가로 70cm가 됨직한 초서체의 글씨로 새겨져 있었다. 조선 중기의 명필 황기로(黃耆老)의 필적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되어 판독이 어렵기는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글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금오(金烏)’란 금오산을 말한다. ‘동학(洞壑)’은 ‘동천(洞天)’과 같은 의미로 깊고 큰 골짜기를 말한다. 즉 금오산의 깊고 그윽한 골짜기를 말하는 것이다. 대혜폭포에 도착하니 바위 위에 잔솔이 서 있고, 잔솔 아래는 이끼들이 생기 얻음을 자랑한다. 폭포 위 바위를 올려다보니 몇 포기 들꽃들이 노란 잎을 벌리고 있다. 폭포의 부서지는 가는 물줄기 바람에 흔들리는 초목들이 부채살 햇빛에 눈부셔 고개를 돌리고 있다.

내려오는 길, 정년이 며칠 남지 않은 교장들이 눈에 띄었다. 미선나무의 종류가 색깔에 따라 다르듯이, 그들이 이루어 놓은 일들도 다양하리라. 사람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칠성 박영춘 교장은 “학교장 특별 직무연수에 교장이 오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어떻게 살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의 방식이 중요하리라.

대추야자 씨가 싹트는 아름다운 시절과 같은 과거를 보냈던 그들이, 천연기념물 시과(翅果)의 미선나무 열매처럼 익과(翼果)되어, 그저 바람을 타고 멀리 흩어지는 날개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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