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복 지방자치연구소장 영진전문대 명예교수
초가을 높은 하늘 탓인지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경복궁 초입 넓은 터의 주차장이 관광버스로 꽉 차 숨이 막힐 정도다. 외국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들 모두가 돈으로 보인다. 나의 속물근성 때문일까. 무리지어 다니는 중국인들의 큰 목소리가 그들 나라의 경제를 대변하는 것처럼 들린다.
내국인들 가운데는 유독 노인들이 많았고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나는 고궁이나 고택, 옛 절터를 찾을 때면 건물 뒤편 후미진 곳을 돌아보는 습성이 있다. 경복궁의 색 바랜 단청, 나무틀의 요철 이음새에 눈을 주면서 세월의 풍상에 갈라터진 기둥을 만져 보면서 타임머신을 옛 그 때에 맞춰본다. 궁터를 오가는 옛 선인들의 발자국 소리, 벼슬아치들의 잔기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안내 표지에 따라 궁성의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노인들의 행렬과 마주치는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즐거운 나들이 모습을 보면서 말 많은 노인복지문제에 마음이 꽂혔다. 국민소득 2만 불을 겨우 넘긴 나라에서 복지에 관한 갑론을박이 과연 온당한 짓인가. 옛 왕들이 정사를 보던 궁 앞에서 “가난은 나라도 못 구한다”는 말이 얼핏 떠올랐다. 어릴 때의 생각도 났다. 양식이 떨어지면 이웃에 가서 됫박의 쌀이나 연탄 낱개를 빌려오던 장면들이 파노라마로 다가온다.
우리 국민들은 가난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은둔적 미덕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개인의 가난을 나라가 책임져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일도 없고 빈부 격차의 틈새가 너무 벌어져 있다. 국민들 중에는 아직도 복지라고 하면 양로원, 장애인시설, 육아원 등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 외에도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는 저소득층이 의외로 많다. 최저생계비 이하인 기초생활수급자를 비롯한 어려운 계층이 생계비와 의료급여 등 다양한 지원을 받는다.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을 뽑아 도움을 주는 선별적 복지프로그램이다.
요즘처럼 복지라는 말이 회자된 때도 없었다. 65세 넘는 노인에게 사망할 때까지 매월 연금을 지급하고 5세 이하 아동에게 양육수당을 주고 심지어 대학등록금의 반을 지원해 주겠다는 등 별의별 보편적 복지아이템이 남발한다. 스스로의 무능을 탓하면서도 애써 환경을 수용하는 보통사람들에게 복지헛바람을 집어넣은 장본인은 정치인들이다. 탐욕의 여·야정치인과 집단들이 함부로 내 놓은 복지공약은 국민들로 하여금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다.
그들의 복지약속은 거의가 생산성이 없는 무상복지들이다. 퍼주기만 하고 회수를 못한다. 당사자인 노인들은 참고 있는데 일을 해도 안 해도 꼬박꼬박 세비를 챙기는 정치인들이 끼어들어 혼란을 만들고 있다. 고궁에서 만난 노인들의 즐거운 표정에서 나라가 노인들에 베푼 배려에 감사함이 담겨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65세만 넘으면 누구나 전국의 지하철, 고궁, 사찰 등 문화재 시설 이용 시 무료혜택을 받는다. 또 병·의원도 큰 부담 없이 이용한다. 기본적인 노인복지의 틀은 이미 깔려있는 셈이다. 복지에 욕심을 내면 한도 끝도 없다. 어떤 형태로든 국가로부터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불만을 표출하지 않는다. 정치의 궁극적 가치가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있다고 하지만 교언영색으로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서는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약속한 노인기초연금 공약이행에 차질이 생겼다며 고개를 숙였다. 강한 의지는 있었지만 재정문제로 벽에 부딪친 것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재정이 풍부하면 무슨 일이든 척척 해 나갈 수 있지만 나라 경영에도 불가항력적인 일이 있을 수 있다.
임기 중 계속 노력하겠다고 하니 기다려 보자. 돈이 없으면 복지도 어렵다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인데 대통령이 사기를 쳤다고 몰아세우는 반대당의 행태를 보면서 정치가 복지를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 대표가 쉬운 말로 하지 않고 자주자주 꽈배기 코멘트를 하는 것을 보면서 문인으로서의 자질에 흠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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