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춘추>팔공산의 공룡 발자국
<문화춘추>팔공산의 공룡 발자국
  • 대구신문
  • 승인 2009.01.11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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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이 20cm정도 되는 것이 몇 개가 보인다. 국화빵 형상이다. 1억년의 세월이 흐를 동안 발자국은 그대로 빵 틀 같은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자리에 공룡이 서 있었다니, 그리고 이 골짜기로 아래로 모두가 호수였다니……. 나는 팔공산 골짜기에 서서 1억년의 시차를 두고 동일 공간에 서 있음을 감개무량하게 느끼고 있다.

그건 정말 의외의 소득이었다. 막걸리 한잔이 가져다 준 발견이었다. 동네사람들과 어울린 술자리에서 나는 팔공산 인근에서 오래 근무하며 공산성의 흔적은 커녕 공룡발자국 하나 발견하지 못했음을 한탄하였다. 그러자 그중 한사람이 반야월 신천골 골짜기 부근에서 공룡발자국 같은 것을 보았노라고 일러주는 것 이었다.

그건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팔공산 정상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공룡발자국이 존재하기가 어려우나 골짜기 하류 같으면 퇴적암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다음날 나는, 바로 신천골로 달려갔다. 사실 난 그때까지 공룡발자국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렵지 않게 커다란 바윗덩어리에서 발자국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가락이 세 개 있는 형상이었다.

중생대 백악기 공룡발자국이며 초식공룡의 발자국 화석이라고 찾아온 지리학과 교수님은 설명하였다. 아기공룡과 큰 공룡발자국이 각각 너 댓개씩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아마 그들은 팔공산의 숲에서 배불리 먹고 호숫가에서 사이좋게 휴식을 즐겼을 것이다. 물가를 평화롭게 거닐었을 그들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들이 살았을 당시 대구는 거대한 호수였다고 한다.

그 큰 호수가 세월이 흘러 육지로 변하고 그 땅위에 사람이 살았다. 그들이 부족을 이루고, 대구라는 명칭을 붙이고 문명을 만들어 오늘날 대형아파트를 군데군데 높이 쌓아 놓았다. 그 가운데 사는 내가 어쩌다 막걸리 한잔의 인연으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긴 세월 속에 내게 연결되어온 한줄기 인연이 경이롭다.

그 오랜 시간을 묵묵히 제자리를 지켜온 아기와 어미의 발자국이 경건하게 보인다. 조금만 살기가 어려워져도 쉽게 가정이 해체되는 우리들의 모습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일까. 발자국은 수 천 년 세월을 커다란 바위덩어리 속에 암흑으로 압인되어 있다가, 마침내 오늘 제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팔공산의 나뭇잎을 뜯어 먹은 후, 고작 호숫가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새끼와 유유자적하였을 것이다. 남을 해치지도 않았고, 욕심도 없었을 것이다. 균형을 못 잡고 뒤뚱거리며 걷는 새끼를 귀엽게 바라보며 어미는 행복에 젖어 한참 서 있다가 깊숙한 발자국을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물욕에 자아를 잃고 헤매는 현대인들에게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발자국은 침묵으로 웅변하고 있다. 부질없이 바쁘게 다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나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마침 천 원짜리 지폐가 몇 장 보인다. 옳거니, 하산 길에 막걸리나 한 병 사들고 집에 가서 아이들과 놀아야겠다. 몇 걸음 내려오다 보니 계곡물에 젖은 신발이 햇볕에 금방 마를 내 발자국 몇 개를 그려 놓았다.

박태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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