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서거 104주년을 맞이해 ‘슬픈 별이여, 고향으로 가자 …’
안중근 의사 서거 104주년을 맞이해 ‘슬픈 별이여, 고향으로 가자 …’
  • 승인 2014.03.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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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미
대구지방보훈청
복지과
1909년 가을, 만주 하얼빈 역에선 6발의 총성 뒤에 젊은 청년의 가슴 시린 외침이 울려 퍼졌다. “Корея! Ура!(까레야 우라!: 대한 만세!)” 그는 바로 안중근이었다. 그의 하얼빈 의거는 일본의 침략적 제국주의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향후 독립운동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도마 안중근이라는 개인을 돌아본다면 그의 저서 ‘동양평화론’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비록 총을 들었지만, 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였다.

잠시 두 눈을 감고 의거 전날의 그 옆에 있어 보노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가족에 대한 인간적인 그리움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국의 독립과 평화에 대한 식을 줄 모르는 열망은 그의 손에 평화를 이루기 위한 무기를 들게 했다. 또한 이는 하얼빈 역에서 체포된 후에도 그리고 재판과정에서 조차 그를 당당하게 서있게 하는 버팀목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 후, 그의 모친인 조마리아 여사는 일제에 죽음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죽으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며, 흔들릴 수 있는 그의 마음을 잡아주기도 했다. 이런 그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안중근이라는 위대한 별이 진정 빛날 수 있었을 것이다.

104년이 지난 올해 2월 14일, 누군가의 손에는 초콜릿이 들려있었겠지만, 어느 초등학생의 손에는 편지 한 통과 국화꽃이 있었다. ‘안중근데이’라고도 부르는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을 맞이하여 한 초등학생이 기념관 동상에 이를 두고 간 것이다. 바쁜 일상에 과거를 돌아보기 힘든 요즘, 어른들의 마음에 돌 하나가 던져졌다. 역사에 소홀했던 지난 모습에 대한 반성과 미래 새싹들에 대한 희망이 교차하면서 마음이 뭉클해진 것이다.

다가오는 3월 26일은 바로 독립운동의 핵심이자 모범인 그의 서거일이다. 그는 뤼순감옥에서 서거하기 전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나라가 주권을 되찾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104년이 되는 지금에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의 유해 발굴 작업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의 서거 104주년을 기념하여 다시금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독립 정신을 기리고 그의 유해를 적극 발굴해 고국으로 봉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그가 차디찬 감옥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두 손을 모아 기도한 것처럼, 하늘을 향해 외쳐본다. 슬프고도 위대한 별이여, 가자! 그대의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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