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찰랑~ 물잔 들고 건배!
찰랑찰랑~ 물잔 들고 건배!
  • 승인 2014.03.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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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현
파호초 교무부장
1990년대 초반에는 학교에서 전 직원 저녁 회식을 할 때마다 빠질 수 없는 메뉴 중 한 가지가 ‘술’이었다. 하루 종일 학교 근무를 마치고 퇴근 후 갖는 회식 자리는 다 함께 가벼워진 마음을 들뜬 술로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회식날이 되면, 초임이나 저경력 교사들은 평소 어렵게만 느껴졌던 고경력 교사 곁으로 달려가서 술잔을 권하는 것이 관례였고, 술잔을 주고받는 분위기에서 평소에 미처 하지 못했던 이야기꽃을 피우며 머쓱한 마음을 표현하곤 했었다. 이 때, 술을 못마시거나 술을 싫어하는 교사들은 불편한 술잔을 피해 이리저리 숨거나 자리를 옮겨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몇 년전부터는 학교 회식 문화의 모습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특히, 2012년 3월에 내가 부임해 온 이 곳 파호초는 교장 선생님부터 여자 분이어서 그런지 저녁 회식은 정말 손꼽을 만큼, 필요한 때에만 전직원이 함께 참여한다. 그리고 이 때 회식 상차림 메뉴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의견을 모아서 정할 수 있지만 딱 한가지 ‘술’은 주문할 수 없도록 불문율이 되어 있다.

회식 자리에서 교장선생님께서는 “다들 애 키우고 피곤하신데, 식사하고 일찍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보내세요” 하면서 술잔을 돌리면서 회식 시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메뉴에서 아예 ‘술’을 제외시킨 것이다. 그래서 직원 회식 자리에서 술 대신 물이나 음료수를 유리잔에 가득 채우고 건배를 한다. 처음에는 좀 어색하기도 하고 회식 자리에서 뭔가 빠진 허전한 느낌이었지만, 차츰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모든 교사들이 내심 술잔 돌리기 없는 회식 문화를 반가워하는 분위기다.

‘술’이 사라지면서 저녁 식사 후, 식당 근처 2차로 노래방이나 클럽을 찾아 배회하던 모습도 더불어 사라졌다.

‘청렴’이란 특별한 사람이 특별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이나 마음가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늘 익숙한 직장 생활 속에서 언제 부턴가 ‘관행’처럼 굳어져서 우리 스스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 바로 그 곳에서 ‘청렴생활’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늘 ‘회식’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했던 ‘술 문화’는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면서도 얼마든지 마음이 오가는 진실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 그러한 회식 문화 정착이 곧 ‘청렴’한 생활의 실천 결과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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