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은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에 대한 화답”
“내 작품은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에 대한 화답”
  • 승인 2014.04.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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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가 남석 이성조 선생

‘묘법연화경’ 168폭 병풍 제작 후 영적 계시 받아 그림 그려

그림을 그릴 땐 배 고픈 줄도 아픈 줄도 모르고 5~6시간 몰입

작품을 확대해 보면 생명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어
/news/photo/first/201404/img_126895_1.jpg"남석이성조/news/photo/first/201404/img_126895_1.jpg"
이성조 선생은 “지금은 눈을 감고 글씨를 쓴다. 내가 변했듯이 내 서예작품도 지금은 많이 변했다. 비록 눈은 감고 쓰지만 인상이 변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내 글씨도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세상과 담을 쌓고 팔공산 자락에서 칩거하며 작품 활동에 전념해 온 서예가 남석(南石) 이성조(77) 선생에게는 세상의 모든 현상이 인연설(因緣說)로 다가온다.

한때 성철 스님 밑에서 불교 수행자를 자처했던 그가 불교의 인연설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최근 그가 불가사의한 인연의 주인공이 되고 보니 인연설이야말로 불교의 핵심이자 삼라만상 운용의 진리로 다가오는 것이다.

◇ 서예가에서 절대자의 도구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선생과 불가사의한 인연의 사연인즉슨 이렇다. 첫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7권, 6만9천384자로 구성된 불교의 경전인 ‘묘법연화경’을 168폭, 120m의 병풍으로 제작해 고희전에 전시하며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 인연의 시작점이 됐다. 무려 3년여 동안 바깥출입을 금하고 작업에만 몰두한 끝에 규모와 공력에 있어 압도적인 대작을 선보였던 것이다. 작품 제작에 앞서 ‘묘법연화경’을 3번이나 베껴 쓰는 등 60년 필력(筆力)과 법력(法力)을 모두 쏟아 부은 끝에 탄생한 대작이었기에 세상이 경천동지(驚天動地)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엄청난 일을 해낸 그에게 주어진 대가는 실명 위기까지 가는 큰 시련이었다. 지금도 그의 시력은 서예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그의 시련은 신이 남석을 도구로 삼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했으며, 그에게 이 작품은 또 하나의 예술적·영적 전환의 계기가 됐다.

고희전을 끝낸 후 어느 날 새벽 기도 중에 ‘경전은 그만큼 썼으면 됐으니 이제는 그림을 그려보라’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음성을 듣게 되면서부터 그의 또 다른 예술세계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당시 귓전에 울렸던 음성의 실체를 성령이었다고 굳게 믿는 듯했다. 음성 사건 이후 그에게 찾아온 변화는 성령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서예가로 60년을 살며 서예 밖에 몰랐던 그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에 이끌려 밑그림이나 미리 구상하는 과정 없이 이제껏 보지도 구상한 적도 없는, 말 그대로 신비로운 이미지들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화려한 색감과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형상들이 그의 손끝에서 마치 우주의 빅뱅과도 같은 아우라로 탄생하기 시작했다. 한국화도, 서양화도, 그렇다고 디자인도 아닌 모호한 장르의 작품들이 새벽 기도 후면 어김없이 그의 손끝에서 요동쳤고, 그렇게 얻어진 작품이 111점에 이르고 있다.

- 이전에도 이런 작품을 한 적이 있었나.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는 때때로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이 커서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전통 서예의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난 7년 동안 나의 예술세계에 일어난 변화는 우주의 빅뱅에 견줄 만한 큰 혁명이었다.”

- 서예가가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한가.

“나 역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어느 날 알 수 없는 존재의 목소리를 들은 이후부터 기도가 끝나면 갑자기 어두운 눈이 밝아지고 붓을 잡으면 내가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붓이 자유자재로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나는 그저 붓이 가는 대로 행하기만 하면 됐다. 그림을 그리는 5~6시간 동안은 배고픈 줄도 모르고 몸이 아픈 줄도 모르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됐다.”

- 나빠진 시력은 그림을 그릴 정도로 회복된 것인가.

“내 그림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50배로 확대해보면 그 안에 형상이 기기묘묘하고 섬세하기 이를데없다. 이런 형상을 눈이 어두운 상태로 어떻게 그릴 수 있었겠나. 하지만 내 시력은 기도 후 그림 그리는 몇 시간만 밝아있을 뿐이지, 그림 그리기가 끝나면 다시 닫힌다.”

- 그림을 그리는 동안 작품 외 변화가 있었나.

“작품을 제작하는 7년 동안 내 작업실에 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스님, 신부님 등의 종교계 인사는 물론이고, 학계, 언론계, 예술계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았다. 도심에서 떨어진 산 중에 살고 있는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처럼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 그림을 그릴 당시 자신은 누구였나.

“아마도 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기도로 무의식 상태로 침잠해가는 내 잠재의식 속에 외계의 힘이 들어와 내 몸을 빌려 어떤 메시지를 표현한 것 같다.”

-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이 내가 제일 답답해하는 부분이다. 내가 그린 그림이지만 홀려서 정신없이 그림만 그렸을 뿐이지 정작 나 자신도 그림의 의미나 메시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누가 내 그림에 담긴 의미를 속 시원하게 해석해 주면 얼마나 좋겠나.”

- 그림을 본 사람들은 어떻게 평하나.

“내 그림에서 우주를 본다고들 얘기한다. 중세 서양의 미켈란젤로가 그린 천지창조의 21세기 동양판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내 그림에서 우주와 천지창조 등의 이미지를 공통적으로 떠올리는 것 같다. 그렇게 보니 나 또한 그런 것 같다.”

-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나.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70억 지구인 가운데 절대자가 나를 선택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한 때 백련암에서 성철 스님 밑에서 불교 공부를 하며 우주의 이치에 깨어있고자 했고, 또 술, 당구, 노래, 운동 등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기예에도 능하고, 서예로 예술의 세계로 일획을 긋고, 또 불교경전인 ‘묘법연화경’을 120m의 병풍으로 써 내는 법력을 보면서 절대자께서 저 사람이면 심부름을 시켜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것은 인연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현상이다.” 
/news/photo/first/201404/img_126895_1.jpg"남석이성조작5/news/photo/first/201404/img_126895_1.jpg"
이성조 선생은 지난 7년간 영적 힘으로 그려낸 작품 중 99점을 ‘우주창조-광령(光靈)’ 타이틀로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에서 13일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 또 다른 예술세계로 세상 나들이

남석 선생이 서예가가 아닌 또 다른 예술세계로 세상 밖 나들이를 하고 있다. 지난 7년간 영적 힘으로 그려낸 작품 중 99점을 ‘우주창조-광령(光靈)’ 타이틀로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에서 13일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희수전으로 열리는 그의 서예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가 60여년 동안 일관되게 이루어 왔던 필묵의 작용과 조형 의식에서 벗어나, 우주와 교감하며 새로운 조형언어로 만들어낸 전혀 새로운 작품으로 서예계와 관람객들에게 놀라움을 전하고 있다.

원자구조 같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세포 같기도 하며 때로는 우주공간에 떠 있는 군성(群星)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듯 한 이번 작품들은 그가 일관되게 다루어 왔던 단색의 표현양식에서 탈피해 다원색의 구성과 조화가 함께 어우러진 형식을 갖고 있어 신선함으로 다가오고 있다.

- 그림이 알듯말듯 하다.

“이 그림은 절대자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그림의 좋고 나쁘다는 경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그림을 그린 나 또한 의미를 모르니 감상법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보고 그림 속 의미를 살피고 메시지를 듣는 것은 철저하게 관람객의 몫이다. ‘관람객들이 잠시나마 그림을 감상하면서 우주와 삶의 근원에 대해 빠져들게 하는 것’, 그것이 내게 그림을 그리게 한 절대자의 의도인지도 모르겠다.”

- 작가로서 이 그림을 본 관람객들이 어떤 감화를 받기를 희망하나.

“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 자신 많이 변했다. 알다시피 나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눈빛이 강했다. 특히 젊을 때는 굉장했다. 하지만 지금 내 눈빛을 보고 사람마다 편해지고 순해졌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24시간 편안하고 행복하다. 혹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무한긍정주의자로 바뀌었다. 선정(禪定)의 상태에 왔다 갔다 하면서 가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절대 세상을 무의식상태에서나마 경험한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나의 변화가 내 그림을 보는 관람객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으면 한다.”

- 작가로서 그림 감상 포인트를 짚어 준다면.

“대개 그림을 사진으로 확대하면 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내 작품은 밀도가 촘촘해 확대해 보기를 권장한다. 오히려 확대해서 가까이 보면 볼수록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마치 우주가 생명체를 품고 있듯 그림 속에서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그렇다면 이 작업이 굉장한 섬세함으로 제작됐다는 것인데.

“뾰족한 끝을 잘라내 평평하게 만든 붓과 이쑤시개, 나무젓가락, 면봉 등으로 세밀하게 작업했다. 이러한 일반적이지 않은 도구를 사용하게 된 것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작업 도중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무엇보다 시력이 극도로 나쁜 내가 이런 세밀화를 그렸다는 것이 지금도 아이러니다.”

- 이번 전시를 신작 발표회라고 특별히 강조했다. 이유가 있나.

“신작발표회는 이번 전시 작품들은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처음에는 전시회를 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절대자가 명하는 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에 작품을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전시 작품에 가격을 매겨 판매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신령스러운 힘을 모독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다. 또 111점은 거대한 작품을 이루는 하나의 퍼즐 조각 같은 것이기 때문에 1개라도 없으면 퍼즐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작품을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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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조 선생은 지난 7년간 영적 힘으로 그려낸 작품 중 99점을 ‘우주창조-광령(光靈)’ 타이틀로 대백프라자갤러리 전관에서 13일까지 전시회를 열고 있다.

◇ ‘이제는 부적을 그려보라’는 새로운 계시 받아

남석 선생은 금권에 물든 서예계를 계탄하며 지난 20여년을 서단과 연을 끊고 칩거해 왔다. 개선되기보다 점점 더 혼탁해져가는 현 서단의 상황을 계탄하며 서단으로부터 분리되어 오직 예술에만 전념하고 있다. 선생은 “그때 잘 들어왔다. 지금까지 내가 세상사에 휩쓸려 살았다면 오늘의 내 위치 또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술이나 먹다가 지금쯤 병들어 죽었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계를 맛보고 그런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꿈도 못 꾸었을 것”이라며 속세를 개탄하는 동시에 선(禪)의 세계로 몰입한 지난날을 다행스러워 했다.

- 지금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나.

“지난해 10월에 또 한 번의 계시를 받았다. ‘이젠 부적을 한번 그려보라. 너 아니면 안 된다. 나의 염력으로 내가 시키는 대로 그려라’는 메시지였다. 기왕 도구로 선택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잠재의식 상태에서 새벽마다 기도하고 부적을 그리고 있다. 벌써 몇 작품 완성했다.”

- 향후 어떤 작품 하고 싶나.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현재 부적 그리기를 하고 있지만, 또 언제 새로운 에너지가 찾아올지 모른다. 나는 그저 그 에너지에 이끌려 화답할 뿐이다.”

- 서예 작업은 어떻게 되나.

“그림 그리기가 끝나면 눈이 어두워져 서예를 예전처럼 할 수가 없다. 대신에 지금은 눈을 감고 글씨를 쓴다. 내가 변했듯이 내 서예작품도 지금은 많이 변했다. 비록 눈은 감고 쓰지만 인상이 변하고 마음이 편안해지니 내 글씨도 편안해졌다. 그림에서도 내 마음속에서도 초조하고 불안하던 지난날의 감정들이 모두 빠져 나간 것 같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남석 선생은 우리나라 서단(書壇)에서도 이름난 원로다. 1959년 만20세 약관의 최연소 나이에 국전 서예부문에 입선한 이후, 13번의 입·특선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로도 활동하며 모두 34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독립기념관, 해인사 백련암, 대구시청, 미국뉴욕한국문화원, 한진그룹, 경북도청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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