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잃어버린 당신, 잠깐이라도 웃으세요”
“미소 잃어버린 당신, 잠깐이라도 웃으세요”
  • 김민정
  • 승인 2014.04.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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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단체 ‘광대’ 김보배·이선아·김보람·김상학
버스 탄 사람들 하나같이 ‘무표정’ 안타까워
20대 청년 의기투합 ‘즐거움X버스 프로젝트’
창틀에 유머 글귀…반응 좋아 계속 붙여놓기로
‘장난 2탄’ 시민 고민 공유하는 힐링엽서 추진
광대와 함께 할 ‘대구 느낌’ 아는 멤버들 모집
‘고담 대구’ 오명 벗고 활기찬 도시 만들고파
광대단체샷
문화기획단체 ‘광대’에 20살을 갓 넘긴 젊은 열정이 모였다. 왼쪽부터 김보배(여·24)·김보람(여·23)·이선아(여·24)·김상학(24)씨가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우울한 대구를 재미있고 활기찬 곳으로 바꾸어 놓고 싶다”고 말했다.
“우울한 대구, 저희 광대(狂大:대구에 미치다)가 ‘장난’으로 바꿔놓을께요.”

오늘 아침도 늦었다. 얼굴에 물만 묻히고 허겁지겁 뛰쳐나와 출근길 버스에 올라탄다. 겨우 한숨을 돌리는데 버스 창틀에 붙여져 있는 글귀를 보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못 생긴건 괜찮아?’ ‘내 애인은 태어나긴 했는지’. 누가 붙여 놓은 걸까? 분명 광고는 아닌데….

대구에서 650번 버스를 타면 버스 창틀에 붙어있는 이런 재미있는 글귀를 볼 수 있다. 20살을 갓 넘은 젊은 열정들이 모여 만든 문화기획단체 ‘광대’에서 붙여논 것들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출근길 무표정하게 앉아 스마트폰만 들여보는 사람들에게 잠깐의 미소를 짓게 만들고 싶다는 것.

지난 20일 한 카페에서 ‘광대’의 멤버인 김보배(여·24)·이선아(여·24)·김보람(여·23)씨를 만났다. 김상학(24)씨는 서울에서 페스트푸트 관련 사업을 하고 있어, 전화로 이야기를 들었다.

◇고담도시 대구, 무표정한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미소를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에 장난 쳐보고 싶었어요” 시작부터 대학생의 상큼함이 묻어나는 대답이었다.

광대의 대표인 보배씨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냐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냥 무심히 버스 탄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됐죠. 아.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이 정말 하나같이 표정이 없는 거에요. 웃고 있는 사람이라면 스마트폰보고 있던 사람들이 전부? 멍한 사람 아니면, 휴대전화 만지고 있는 사람 뿐이에요. 그냥 사람들한테 잠깐이라도 웃음을 주고 싶었죠”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런 아이디어는 처음 보배씨의 머리에서 나왔다. 친구들을 모았다. 대학 수업에서 조모임을 함께 했거나 다른 활동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던 친구에게 연락했다.

시작은 단순히 ‘내 이거 해볼라카는데, 니도 같이 하자. 좀 도와도’였다. 제안 아닌 제안이었다.

곧 이들은 함께 버스를 타는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이런 글귀를 붙여 즐거움을 주기위한 ‘즐거움X버스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선아씨는 “저는 처음에 그냥 도와주는 건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내가 멤버에 들어가 있었다”며 웃었다. 보람씨도 “언니가 한번 해보자길래 별다른 의심도 없이 OK했다. 물론 지금 후회는 없고 재미있었다”고 했다.



◇키득키득 즐거운 버스 프로젝트

지난해 가을, 광대는 본격적으로 ‘즐거움X버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버스 안에 광고가 붙여져있는 곳을 빼고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가는 곳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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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첫 표적’은 ‘버스 벨’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손이 많이 가는 곳이기 때문에 금방 떨어질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최종 표적’은 ‘창틀’로 결정됐다.

컨셉트을 정하고 책과 만화, SNS 등에서 재미있는 문구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찾았다. 산업디자인학을 전공한 선아씨가 광대의 로고와 문구 디자인을 도맡았다. 페이스북에 광대라는 이름의 계정도 만들었다.

지난 1월 대구시와 대구버스운송사업조합, 버스 회사에 찾아가 허락을 받았다. 650번 버스와 349번 버스가 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버스 창틀에 메시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글귀의 컨셉은 힐링, 사투리, 유머 등 크게 3가지였다. ‘그래,괜찮아 잘 해온거야’, ‘너라서 좋아’,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등은 사람들의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는 힐링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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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니 올 줄 알았다’, ‘건강이 최곱니데이’, ‘밥은 묵고 다니나’, ‘그만 봐라, 폰 뚫린데이’, ‘천천히 내리소. 차 다칩니데이’ 등은 대구 특유의 사투리를 테마로 한 것이다.

유머는 말 그대로 ‘빵 터지는’ 메시지들이었다.

‘엄마 아빠는 미남미녀, 그런데 너는’, ‘내 애인은 태어나긴 했는지’, ‘조심해 차 다쳐’. 광대 멤버들은 이런 글귀들을 버스 창틀에 써붙이며 키득키득했다.

추운 겨울 버스 차고지에서 버스 창틀에 글귀를 붙이는 이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전해주는 버스 운전기사도 있었다고 한다.



◇응원과 공감, 긍정적인 반응들

이들은 지난 1월 초 대구 중구 중앙로 약령시 앞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즐거움X버스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과 다른 버스 노선으로 이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어떻냐는 2가지 질문이었다.

자신들의 이런 ‘장난’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설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90%는 광대와 프로젝트를 응원하고 공감해주는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처음엔 주위 친구들이 반응을 보여줬었는데, 시간이 흐르다보니 이젠 모르는 분들도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구를 보고 사진을 찍어서 광대 게시판에 올려주시더라고요. 이런 직접적인 반응이 느껴지니까, 정말 모든 게 보람으로 다가왔어요. 더욱이 현장 설문조사는 직접 시민 분들을 뵙고 소통하는 것이라 즐거웠어요”라고 보람씨는 말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3월초까지 딱 한 달만 진행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기대를 넘어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아직도 버스 창틀에는 이들이 붙여놓은 글귀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보배씨는 “한 달이 지나서 떼려고 했는데 기사님들이 돈 들이는 것도 아니고 재밌으니 그냥 붙여놓으라고 하시더라”며 웃었다.



◇대구에 미친 광대(狂大)

하지만 이들의 ‘장난’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들은 현재 이 프로젝트의 ‘2탄’으로 ‘힐링엽서’를 구상하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말 못할 상처나 고민을 익명으로 엽서에 적어서 우편함에 넣도록 하는 것이다. 모인 엽서는 사람들에게 전시된다. 외국에서는 사람들의 이런 고민을 모아놓은 책이 출판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서관이나 지하철역 등을 돌며 우편함을 설치할 장소를 찾고 있다.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도 쏟아진다. 선아씨는 “형광 바닥이 있는데 만들기는 쉽다고 한다. 밤에 동성로 한군데에 깔아두고 음악만 틀어놓으면 자연스럽게 길거리 클럽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형광 바닥 만드려면 공대생 모집해야겠네?”. 보람씨의 이 말에 멤버들 사이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상학씨도 대구에 내려오는 5월부터 다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이 단체를 앞으로 이끌어가고 함께할 멤버들도 모집하고 있다. 대구의 ‘느낌’만 알면 된다고 한다.

대구는 ‘고담 대구’로 알려져있다. 고담시는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로 범죄와 사고가 끊이질 않는 곳이다. 이들은 대구가 이렇게 알려져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대구를 좀 더 즐겁고 재미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광대’의 의미도 미칠 ‘광’자에 대구 ‘대’자를 따왔다. ‘대구에 미치다’라는 의미다. 우울한 대구를 재미있고 활기찬 곳으로 바꾸어 놓고 싶어하는 20대 청년들이었다.

김지홍기자 kjh@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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