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을 걷어내고
진흙을 걷어내고
  • 승인 2014.04.24 09: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배규성 논설위원
태국의 방콕에는 왓 트라이밋(Wat Traimit), 일명 ‘황금불상의 사원’이란 절이 있다. 사원 자체는 사방 10m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이지만, 사원 안에는 무려 높이 3m, 무게 5.5t의 커다란 부처님의 좌불상이 보는 이들을 압도하고 있다. 게다가 이 불상은 눈부신 황금불상이다.

따스한 햇살에 황금빛으로 빛나며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장엄한 이 불상은 대구의 유명한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마찬가지로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영험함이 있다하여 많은 사람들은 금잎(금박)을 사다가 본당이나 마당의 작은 다른 불상의 아픈 부위에 붙인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아픈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 불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 데에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때는 1957년, 이 사원의 승려들이 방콕 시내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사원에 모셔져 있는 커다란 점토 불상을 새로운 사원의 법당으로 옮기려 했다. 불상이 크고 무거웠기 때문에 크레인을 동원해야만 했다. 드디어 크레인이 커다란 점토불상을 들어 올리는 순간, 혹시나 불상이 다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던 주지승이 갑자기 크레인을 멈추게 했다.

엄청난 무게로 인해 갑자기 불상에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그 때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주지승은 즉시 불상을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불상이 비에 젖지 않게 커다란 방수천으로 덮게 했다. 그리고 불상을 옮기는 작업은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그날 저녁 늦은 시간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던 주지승은 불상을 확인하러 갔다. 그는 혹시 방수천을 덮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상에 비가 새지 않나 확인하기 위해 방수천을 젖히고 플래시로 안을 살펴보았다. 플래시 불빛이 불상의 금이 간 지점에 비치자 그는 불상에서 반사되는 희미한 빛을 순간적으로 보았다. 그는 순간 놀랐다. 점토불상이 빛을 반사할 리는 없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주지승은 그 빛을 유심히 살폈다. 아무래도 불상을 덮고 있는 점토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주지승은 승려들에게 끌과 망치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호기심과 구도심에 정신없이 점토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점토층을 걷어낼수록 불상안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은 더욱 환해졌다. 마침내 점토층 안에 찬란한 황금빛의 금불상의 일부가 드러났다. 환희에 찬 스님들의 놀람과 환성 그리고 빠른 손놀림 속에 마침내 커다란 황금불상이 스님들을 마주보고 장엄하게 앉아 있었다.

후에,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수 백 년 전 미얀마 군대가 태국의 방콕을 침략했을 때, 당시 태국의 시암왕조 승려들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음을 직감하고 소중한 황금불상에 진흙을 입히기 시작했다. 스님들의 소중한 정성과 바램으로 황금불상은 점토불상으로 서서히 변해갔고, 찬란한 빛도 진흙 속으로 숨어버렸다. 미얀마 군대는 예상했던 대로 시암왕국을 점령하여 승려들을 학살했다. 그 후 황금불상의 비밀은 스님들과 함께 땅 속으로 묻혀버렸다. 점토불상으로 모습을 바꾼 그런 황금불상이 어떤 계기가 있어 이제 다시 본모습을 찾은 것이다.

생텍쥐페리는 이 황금불상의 사연을 듣고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점토불상과 같다. 우리는 두려움에서 생겨난 온갖 딱딱한 껍질로 우리 자신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각자의 내부에는 황금의 붓다, 황금의 그리스도, 즉 황금의 본질이 숨어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황금의 본질을 진흙으로 덮기 시작한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우리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는 진흙을 걷어내고 황금사원의 승려들처럼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제 진흙을 걷어내고, 우리 안의 황금불상을 찾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