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남은 ‘세월’은 어떻게 하나요?
아버지, 남은 ‘세월’은 어떻게 하나요?
  • 승인 2014.05.0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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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애 북에디터
뉴스를 보다 말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갑니다.

밖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내리는 빗방울은 메마른 땅을 적시고 목말랐던 식물들을 촉촉이 적십니다. 내일이면 저들은 싱그러운 빛을 더하겠지요. 하지만, 아버지. 아직도 바다에 사람들이 갇혀 있습니다. 낭랑 18세, 못다 핀 꽃송이가 잠겨 있고, 누구네 아들딸, 누구네 부모, 안타까운 사연들이 바다를 떠돌고 있습니다.

아, 어떡하나요. 얼마나 무서울까요. 자꾸만 한숨이 나고 눈물이 흐릅니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진실’은 더욱더 참혹합니다, 돈에 미친 사람들의 온갖 부정과 비리가 얼마나 썩고 곪았는지, 그 구린내가 온 나라를 뒤덮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저희끼리 살려고 승객을 버린 선장과 선원들을 원망했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 사고 원인이 나오면서는 불법 개조에 불법 운항을 한 해운사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한 관계자들을 욕했습니다.

그런데 사고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들이 하나둘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얼른 건지고자 하는 것이 사람의 본디 마음일 텐데, 어찌 그 순간에도 그들은 이해 관계와 실적을 따지고 변명하기에 바빴을까요? 제자식이 빠졌대도 그랬을까요? 아버지, 대체 인간의 자격이란 무엇입니까?

세월호 침몰로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기사를 봅니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극복하려면 억누르지 말고 슬픔을 나누는 용기를 내라 하고,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는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야 슬픔을 털고 일어날 수 있다 합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건강의학회는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하며 운동이나 신체 활동에 집중하라, 힘든데도 잘 버텨온 자신을 격려하고 칭찬하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보라 합니다.

모두가 좋은 말인 듯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바로 어제같이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저 말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하루아침에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고 기막힌 일들이 수십 일 이어지고 있으며 여전히 암흑 속을 헤매는 고통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는데, 당장에 저런 치유법이 들리기나 할까요?

그런 생각 때문인지 경기도 교육청이 ‘심리상담 교육 및 위기대처팀’을 구성할 것이며, “위(Wee)센터와 트라우마 치유센터 간에 공조를 통한 치료 시스템도 마련”할 것이라 하는데도 그저 마음이 착잡합니다.

슬픔은, 아픔은 그 누군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깜깜한 바닥까지 내려가 어두운 동굴 속에 갇힌 이들 스스로가 현실을 인정하고 자기 마음의 힘을 기른 다음이라야 남은 이들을 다사로이 껴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며,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그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면 심리 상담이나 치유 프로그램은 길고 긴 안목에서 마련되어야 하며, 또 지속적이고 효율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들로 시작하는 것일까요? 우리도 저런 심리 상담을 받았다면 마음에 슬픔도 없어지고, 아버지도 동생이 일찍 떠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요?

오지랖 넓은 걱정들이 앞섭니다. 진도체육관에서 피난민처럼 모여 울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이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해 잘못되면 어쩌나, 가족이 해체되면 어쩌나, 나랏일 하는 수많은 이들이 자기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데 6·4 지방 선거에서는 대체 누구를 뽑아야 하나….

아버지, 지금 SNS에는 노란 나비가 가득합니다. 국민들 염원을 담은 희망의 나비가 아름다운 날개를 펼 수 있도록, 우리 앞에 남은 ‘세월’이 제멋대로 흘러가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그리고 일찍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버지, 제발 약해지지 마세요. 이길 수 없는 삶의 무게, 어쩔 수 없는 슬픔 앞에 무기력해지지 마세요.’ 이 말씀을 좀더 일찍 드렸어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이었을까 아직도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고맙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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