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꿈인가 긴 꿈인가
짧은 꿈인가 긴 꿈인가
  • 승인 2014.05.07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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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성 논설위원
꿈은 깨고 나면 부질없고, 인생은 죽고 나면 허망한데 굳이 엄밀하게 따진들 무슨 큰 차이가 있을까? 하나는 짧은 꿈이요, 또 하나는 좀 더 긴 꿈일뿐이다. 어느 날, 진정으로 잠을 깨는 순간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으리라.

어느 날 나스루딘은 자기 집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새로운 도로, 그것도 아주 멋진 왕의 고속도로(사-라)가 닦여 있는 것을 보았다. 기원전 6세기 서아시아를 통일한 페르시아제국(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는 지중해 연안과 메소포타미아 지방, 인도의 서북부 지역에 이르는 넓은 영토와 많은 민족을 다스렸다. 그는 앗시리아처럼 힘으로만 제국을 다스리면 곧 멸망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과 제도를 통해 제국의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는 방법을 택했다. 다리우스는 제국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왕의 길’이라는 도로를 만들고, 일정한 간격마다 역참을 두었다. ‘왕의 귀’ 혹은 ‘왕의 눈’이라 부르는 왕의 관리들은 이 역참에서 말을 갈아타기도 하고 숙소로 이용하면서 왕의 명령을 신속하게 수행했다. 왕의 길은 왕의 사신들뿐만 아니라 상인들도 활발하게 이용하면서 상업도 크게 발달했다.

언제 이곳에 이런 도로가 건설되었지? 나스루딘은 생각했다. “이 길은 내가 꼭 한 번 걸어봐야 할 길이군.” 이상하게도 평소의 게으른 나스루딘 같았으면 절대 이런 생각을 못 했을텐데, 멋진 왕의 도로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작용했던 모양이다. 나스루딘은 왕의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졸음이 쏟아졌다. 나스루딘은 길가에 누워 정신없이 자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나스루딘이 일어나 보니 터번이 사라지고 없었다. 누군가가 훔쳐가 버린 것이다.

다음 날 나스루딘은 또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터번을 훔쳐간 도둑이 무슨 흔적을 남기지 않았나 주변을 살펴가면서 걸어갔다. 한 여름의 뙤약볕 아래서 한참을 걸었다. 나스루딘은 또 졸음이 쏟아졌다. 나스루딘은 다시 터번을 잃어버린 화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길가에서 한 동안 낮잠을 잤다. 또 얼마나 잤을까, 다각거리는 말발굽소리와 소란스런 방울소리에 잠이 깬 나스루딘은 왕의 도로 저편에서 황제의 근위대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근엄하면서도 험악하게 보이는 황제의 근위병들은 죄수 한 명을 호송하고 있었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나스루딘은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근위병들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어 보았다. 근위대장은 거만하게 말했다. “이 놈을 황궁으로 잡아가 목을 베려하오. 이 죄인은 이 도로를 지키라고 배치한 황제의 근위병인데, 도로는 지키지 않고 잠을 자고 있었소.”

길가에서 잠을 자다 터번을 잃어버려 기분이 상했던 나스루딘은 말했다. “이제야 기분이 좀 나아지는군. 황제의 근위병들이여, 이 왕의 도로를 잘 지키시오. 이 도로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모자를 잃든가 목을 잃게 되오. 다음에는 또 무엇을 잃어버릴지 누가 알겠소?” 그런데 이것은 참 재미있다. 이것은 원래 페르시아의 속담이다. “누구든지 길에서 잠을 자면 모자를 잃거나 머리를 잃어버린다.”

그때 나스루딘은 누군가가 자기를 흔들어대는 것을 느꼈다. 몽롱한 정신에 가늘게 눈을 뜬 나스루딘은 희미하게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아내가 말했다. “이제 그만 일어나요” 나스루딘은 짜증이 나면서 혼란스러웠다. “젠장할, 어떻게 된 일일까?” 나스루딘은 갑자기 모든 것이 허망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니 지금까지의 일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사람들이 ‘깨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내게 ‘잠 들어 있는 것’이고, 내가 ‘깨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잠 들어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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