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국가와 지방정치의 역할
위험국가와 지방정치의 역할
  • 승인 2014.05.1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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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두 대구대 교수
더 많은 말, 더 많은 글이 필요할까? 그 동안 너무 많은 말과 글들이 있었다. 그러나 위로의 말들은 위로가 되질 못했고, 비판의 글들은 비판을 하질 못했다. 말과 글은 공허한 메아리, 텅빈 기표에 불과했다. 세월호의 침몰.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이 참담한 사건 앞에 유족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가슴 저려하고 치를 떨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더 많은 위로와 비판이 필요하다. 가족을 잃은 슬픈 유족들은 더 큰 위로를 받아야 하고, 사회의 고질적 병폐는 철저히 비판 받고 고쳐져야 마땅하다. 참혹한 희생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이런 일을 일으키는 우리 사회의 탐욕, 무책임, 무능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더 많은 언어와 행동이 필요하다.

그 동안의 많은 말과 글을 정리해 보면, 이번 참사는 3가지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으로 빚어진 것이다. 우선 수많은 어린 희생자들을 남겨두고 세월호에서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이다. 이들의 반인간적이고 파렴치한 행태는 온 국민을 분노케 한다. 이러한 극단적 이기주의는 개인적 자질이라기보다 안전과 인명을 경시하는 사회적 의식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침몰할 노후 선박을 수입하여, 객실을 늘이기 위해 뜯어고치고, 심지어 화물을 적정량보다 2~3배나 더 싣고 무리하게 운행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해서 착복한 이윤은 불법적으로 기업경영자와 측근들에게 이전되고, 이들은 교묘한 수법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해외로 빼돌렸다. 이윤과 재산에 대한 무한 탐욕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해 있지만, 결국 엄청난 재난과 희생을 초래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초비상 상황에서 해경을 포함하여 정부의 모든 부처가 보여준 무능함은 위기관리 능력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정부의 안이하고 한심한 대응은 재난구조체계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었고, 정부에 대한 극심한 불신을 자아내었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관련 부처와 관료들은 무능하다 못해 안전을 외면한 기업의 행태를 방조하거나, 규제완화를 통해 이를 조장하고 낙하산 인사를 통해 공모하기 조차했다.

이러한 3가지 요인들, 즉 극단적 이기주의와 무책임, 이윤에 대한 기업의 무한 탐욕, 그리고 재난위기에 대한 정부의 총체적 관리 부실과 무능은 대통령도 자인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 ‘용납할 수 없는 살인과 같은’ 사건을 유발했다. 이 요인들은 서로 뒤얽혀서 우리 사회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재앙적 위기가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현대 사회가 ‘위험사회’라는 주장은 울리히 벡(Ulrich Beck) 등에 의해 널리 알려져 있다. 과거 전통사회에서 발생했던 재난은 대체로 자연적 과정에 기인했다면, 오늘날 재난은 인간 사회의 구조적 메커니즘에 의해 언제 어디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다. 특히 이러한 위험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예로 친기업적 규제완화, 국가 관리기능의 민영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의 유연화로 인해 더욱 고조된다.

위험사회의 도래가 자본주의의 발전 특히 신자유주의화 과정에 내재된 보편적 현상이지만,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한 ‘위험국가’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의 선장까지 비정규직화하는 노동의 유연화, 노후 선박 수입과 개조를 통해 부패한 기업가와 그 측근의 추악한 탐욕을 가능케 한 규제 완화, 안전 점검기관과 피검기업 간 유착을 만연시킨 이른바 ‘관피아’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은 우리들에게 이러한 위험국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근본 방안의 모색과 시행을 간절히 호소한다. 극단적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인명 경시 풍조, 이를 조장하는 경쟁의 심화와 노동의 유연화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안전을 무시하고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는 기업들의 탐욕을 규제하고, 무능한 집단의 권력 유지와 향유가 아니라 국민의 복지와 안전을 우선하는 새로운 경제정치체제로의 전환을 명령한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 또는 경제정치체제는 현재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정치를 통해 구축될 수 있다. 이러한 정치는 거시적인 사회변혁운동을 전제로 하는 것처럼 보이며, 당연히 국가적 차원 나아가 지구적 차원에서 추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첫걸음은 지방정치에서 시작된다.

위험국가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중앙정부와 중앙정치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지방정부와 지방정치의 역할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위험이 발생하는 현장은 항상 국지적이며, 이 현장에 대한 관리는 우선 지방정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지방 정치는 지방정부로 하여금 잠재된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방 안전 거너번스 체계를 구축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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