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터무니없는 주장, 정치지도자들 무지 탓
日 터무니없는 주장, 정치지도자들 무지 탓
  • 승인 2014.05.15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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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근 대구대
일본어일본학과 교수
독도영토학 연구소장
지금 한일관계는 매우 나쁘다. 대략 같은 시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총리가 취임했지만, 단독 정상회담을 한 적이 없다. 일본은 그 이유를 박근혜 대통령이 ‘반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아베총리는 역대정권이 꺼려했던 모든 일들을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도발을 했다.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당연시했고, 역대정권들이 인정했던 침략전쟁을 부인했으며, 고노담화를 부정함으로써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했다.

특히 독도문제에 있어서 과거 정권들이 취해왔던 현상유지정책을 내던지고 독도전담부서를 만들어 다양한 방법으로 도발을 강행했다. 아베정권은 물론이고, 전후 일본정권들은 한결같이 ‘한국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하고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왜 이런 인식이 생겨났을까?

전전 일본의 영토팽창을 위한 침략전쟁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의 투하로 연결되었고, 일본은 침략한 모든 영토를 포기한다는 연합국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락했다. 연합국은 즉시 1946년 1월 SCAPIN 677호를 발령하여 ‘한국이 독도를 통치하고 관할할 것’이라고 하여 독도를 일본이 침략한 영토로서 단정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실제로 독도를 관할 통치하게 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한국의 독도 관할 통치는 합법적이다. 그런데 1951년 대일평화조약에서 연합국이 일본의 영토를 최종적으로 처리하면서 한국이 실효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영토적 지위를 명확치 처리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일본으로 하여금 독도 도발의 여지를 남겼다. 연합국이 그러한 조치를 취한 배경은 일본제국주의가 독도를 침탈하기 위해 만든 1905년 시마네현고시 40호를 근거로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고, 또한 냉전체제 속에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공산진영에 대응하기 위해 패전국으로서 어느 편에도 가담되지 않은 일본을 자유진영에 편입시키려고 일본의 입장을 두둔했던 것이다. 일본외무성의 로비를 받은 미국은 독도를 일본영토로서 인정하려고 했지만,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의 영연방국가들은 SCAPIN 677호에 의해 한국이 관할 통치하고 있는 독도에 대한 미국의 정치적 결정을 수용할 수 없었다.

결국 영국과 미국은 ‘무인도에 대한 분쟁지역에는 관여하지 않고, 유인도에 대한 분쟁지역에는 신탁통치를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한일 양국의 영토 경계를 ‘제주도, 울릉도 거문도를 일본영토에서 제외한다’고 결정했다. 조약 원안에 ‘독도’의 명칭이 빠진 것을 두고 일본은 독도가 일본영토로서 처리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절대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관할 통치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연합국이 애매한 조치를 내림으로써, 일본의 재차 침입을 우려하여 평화조약이 발효되기 직전인 1952년 1월 ‘평화선’을 선언하여 일본의 독도침입을 차단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물론이고 대일평화조약에 서명한 연합국의 어느 나라도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았다. 일본정부는 이를 불법적인 ‘이승만라인’이라고 격하함과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국민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대일평화조약에서 독도가 일본영토로서 결정되었다고 거짓선전과 억지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일본은 미국이 일본을 지지했다는 것을 가장하기 위해 성조기를 달고 여러 차례 독도 근처를 침범했으나, 그때마다 한국은 총격으로 강력히 대응했다.

일본정부의 이런 거짓말은 일본국회에서 들통 났다. 당시 조약국장이 평화조약 조인 국회에서 ‘일본영역참고도’를 배포했는데, 그 곳에 독도가 한국영토에 포함되어 있었다. 야당 전문위원들은 정부가 독도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뻔한 거짓말로 일본국회를 농간했다. 정부의 거짓말은 1965년의 한일협정과 1974년의 대륙붕협정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대일평화조약에서 일본영토로 결정되었다면, 당연히 독도를 일본영토로서 처리해야 했지만, 오히려 한국의 실효적 지배 상황을 묵인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전후 2세대에 해당하는 오부치 총리는 한국의 외환위기 상황을 악용하여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을 강요하여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켰다. 이웃의 불행을 행운의 기회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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