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 떠나는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
경기장 떠나는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
  • 승인 2014.05.1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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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었던 박지성 선수가 24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제 박 선수는 무릎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경기에 임하기가 어려워 은퇴를 결심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산소 탱크’, ‘2개의 심장’, ‘캡틴 박’ 등으로 불리면서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던 박 선수가 축구장을 떠나게 된 것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표현처럼 ‘아시아의 가장 훌륭한 선수’가 구장을 떠나게 됐지만 박 선수는 ‘영원한 레전드’로 한국인의 기억에 살아 있을 것이다.

박 선수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시작해 안용중- 수원공고-명지대를 거쳐 2000년 시드니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이어 박 선수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트갈과의 대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이루었다. 이후 그는 2002년 스승인 거스 히딩크 감독을 따라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했다. 그는 2005년 한국 선수 최초로 UEFA 챔스 본선 골을 기록했고 2009년 한국인 최초로 UEFA 챔스 결승전에 출전했다. 2006년, 2010년 월드컵에서도 그는 큰 공적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가 박지성 선수를 영원히 기억하는 것은 한국 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그의 화려한 공적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그를 기억하는 참된 이유는 그가 뛰기만 하면 퉁퉁 부어오르는 평발과 왜소한 체격이라는 결함을 극복하고 위대한 선수가 됐다는 점이다. 축구 선수로는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 육체적 조건을 박 선수는 오직 불굴의 노력과 끈기, 도전 정신으로 극복해낸 것이다. 박 선수 자신도 “나의 조건은 보잘것 없었지만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경기장에서도 박 선수는 동료들의 말처럼 ‘위대한 봉사자’였으며 성실함의 대명사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경기장을 누비면서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기 위해 헌신했다. 그는 에인트호번 이적 초기에 적응 실패로 동료나 팬으로부터 비난을 받았으나 묵묵한 훈련과 팀을 위한 헌신으로 훗날 ‘구단 천년을 대표하는 선수’로 선정됐다. 올해 에인트호번 마지막 경기에서 박 선수는 성실한 경기 자세로 인해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박지성의 끈기와 노력, 동료를 위한 헌신은 운동선수를 지망하는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청소년에게 삶의 지표가 될 것이다. 모자라는 체격 조건을 극복하고 가장 훌륭한 아시아의 선수가 된 박지성은 모든 청소년들의 모델이 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축구에 제2의 박지성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다른 스포츠 분야를 비롯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도 제2, 제3의 박지성이 나타나 나라를 빛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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