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정규직이었다면?
만일 정규직이었다면?
  • 승인 2014.05.1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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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철학본색 대표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두고 “그런데 알고 보니 문제의 핵심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나는 안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갑판과 기관부의 선원 중 70%가 비정규직이라는 뉴스를 보고 아연실색 했습니다. 비정규직 선원이라면 당연히 위급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이 취약했겠지요. 그리고 언제 잘릴지도 모르는 비정규직 직원에게 투철한 시맨쉽을 요구하기도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분석한다.

즉 그는 세월호 참사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선원 다수가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과연 비정규직 선장, 승무원이었기에, 바로 그 사실이 이번 참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는 게 옳은 것일까?

비정규직이라는 잘못된 고용 방식은 사라져야 하지만 만일 비정규직 양산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2, 3의 세월호 참사를 막지 못할 거라고 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설령 이번 참사에 그것이 하나의 이유로 작용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잠재적으로 ‘직업 윤리’가 부재하며 책임감이 결여될 가능성이 더 높은 존재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왜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돈을 받고, 연금 못 받는 것도 억울한데 윤리적으로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도 ‘결격’으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더욱이 사람의 윤리란 것이 돈 몇 푼에 왔다갔다 하는 헝겊막대 같은 것이 아니다.

이준구 교수의 분석은 고용 안정성의 보장을 촉구하고, 실제로 고용 안정이 지니는 경제적 효과 뿐 아니라 비경제적 측면의 효용도 많다는 것을 지적하려 한 것이겠지만 ‘임금’이 가능하게 만드는 충성이 지닌 ‘역설적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중세 교회의 타락은 교회직에 취임한다는 것이 사명감과 능력에 기초하기보다 성직록이라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와 영지를 얻게 된다는 것으로 본질의 전이가 일어날 때, 그러니까 염불 보다 잿밥으로 관심이 옮겨질 때 일어났다. 이 때 성직록은 성직자에게 성직록을 제공하는 교회와 헌금을 내는 신도들에게 충성을 할 수 있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성직자의 본래적 사명 내지 직업 윤리라고 할 수 있는 ‘신과 공동체 전체에 대한 헌신’은 오히려 더욱 어렵게 만드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 즉 직업 윤리의 발현을 하나의 정의라고 할 때 이 정의는 임금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금에 의해서만 보장되는 것은 아닌 역설적인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받는 임금에 필연적으로 양화될 수 없는 ‘내 생명’에 대한 댓가, 나의 헌신과 사명감에 대한 댓가까지 포함된 것인지에 대한 견해는 저마다 다르다. 그렇다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선장이든 선원이든, 외교관이든 판사든, 장관이든 군인이든 “월급 받는 자”에게 목숨을 건 충성과 봉사, 헌신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월급은 내 목숨에 대한 댓가이기도 한 것일까? 신의 명령이 성직자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것도 실패하는데, 하물면 돈의 명령이 이들에게 사명감의 발휘를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정말 더 많은 돈을 받았고, 정규직이었다면 시맨쉽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일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선장은 사고 직후 수습 방식을 회사의 지시에 따라 진행하기 위해 초동 대처가 늦어졌다고 한다. 이것이 정규직, 비정규직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오히려 정규직이 이런 함정, 즉 전체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해관계에 충성하는 함정에 더 잘 걸려 들기 쉬운 것이 아닌가? 직업 윤리보다는 월급 봉투에, 전체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에, 공공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집중하는 것과 같은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이 품고 지녀온 사회적 양식과 기예, 그 기예를 갖추도록 요구하는 시스템의 문제이지 결코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만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5년 임기의 비정규직이며, 장관들은 수시로 바뀌는 불안한 고용환경 때문에 이 정도 대처밖에 못한다고 봐야 하는 것인가? 또 반대로 공무원들은 소위 ‘정규직’이기에 지금 수습을 아주 잘 해내고 있는 것인가?

중세 교회가 성스러운 것이 붕괴된 공간이었다면, 지금 우리는 공적인 것이 붕괴된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부패한 성직은 면죄부를 파는데 있지 않고 성스러움을 잃어버린데 있다. 합법적인 세속이 타락이다. 부패한 공직은 공공을 잃어버린데 있다. 합법적인 사유화는 가장 무서운 타락이다. 부패한 성직의 끝은 사실상 혁명이었던 ‘종교개혁‘(Reformation)이었다는 사실을 이 정부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문제의 본질은 선원이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할과 윤리의 가치를 ‘자신의 임금 수준’ 이하로 여기는 우리의 인격, 합법적 부패와 사유화에 눈감는 우리의 게으름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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